망 중립성이 미국의 특수한 인터넷 시장을 반영하는 진영 논리일 뿐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라는 해석이 있다. 자국 산업의 이익 확대를 위해 '인터넷 보편성'을 내세우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미국은 국토가 넓다 보니 지역별로 한두 개 사업자가 인터넷 사업을 독과점하는 곳이 대다수다. 네트워크 사업자 경쟁이 제한돼 있다. 사업자는 독점 지위를 이용해 망을 자사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운영할 유인이 높다. 이 때문에 망 중립성 규제를 통해 공정 경쟁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망 중립성을 옹호하는 이유는 또 있다. 막강한 인터넷 산업이다. 매출 기준 세계 인터넷 기업 톱10 가운데 7곳이 미국 업체다. 플랫폼을 형성한 이들은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미국 인터넷 기업이 외국에 쉽게 진출하기 위해서는, 즉 외국 통신망을 쉽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각국에서 망 중립성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통신망을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미국과 상황이 다르다. 통신 및 네트워크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하다. 정부 규제도 강한 편이다. 만약 가입자에 따라 망을 차별하는 사업자가 있다면 손쉽게 다른 사업자로의 이동이 가능하고 정부 규제로 해결할 수도 있다. 망 중립성을 강화할 명분이 약한 것이다. 이 때문에 2015년 유럽연합(EU)이 망 중립성 원칙에는 동의했지만 세부 규제 기준은 만들지 않았다.
더욱이 EU에는 미국과 달리 보다폰·브리티시텔레콤·도이치텔레콤 등 글로벌 통신사업자가 많고, 노키아·지멘스·에릭슨·알카텔 등 통신장비 업체가 다수 포진했다. 반면에 인터넷 기업은 미미하다. 태생 상으로 망 중립성을 옹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망 중립성이 절대 개념이 아니라 국가별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한국형 망 중립성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