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대학에서 인디게임 만들기

이정엽 순천향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국에서 게임은 큰 기업에서 만들어야 하는 물건으로 간주된다. 게이머 대부분은 별 생각없이 오픈마켓 순위권에 오른 게임을 고른다. 그 게임이 바로 주변 친구들이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전체 게임 시장의 98%를 차지한다. 비디오 게임도 PC 다운로드 게임, 아케이드 게임도 이 땅에는 설 자리가 없다. 비단 플랫폼만 이런 것이 아니라 장르나 주제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역할수행게임(RPG)이나 캐주얼 게임 아니면 수익성이 없다고 생각한지 오래다.

이런 상황 아래 대학에서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다소 무모한 일일 수 있다. 대학은 기업에 비해 자본과 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게임 관련 전공과 수업이 희소한 편이다. 필자는 다소 열악한 대학 환경 속에서 10여년 동안 인디게임 제작 수업을 진행해 왔다. 인디게임은 대규모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더불어 개발자 자신의 독립된 개발 방법론과 철학이 필요한 분야다.

이 때문에 강의를 시작할 때는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게임 메커닉(게임을 움직이는 기본 규칙이나 동작 방식)이나 소재, 아이디어를 찾아보라고 강조한다.

강의가 결실을 맺어 최근 의미 있는 게임 하나가 새롭게 출시됐다. 서울대 학생들이 만든 하드토크 스튜디오에서 스팀(Steam)에 출시한 '21일(21Days)'이라는 PC게임이다.

이 게임은 모하메드 셰누라는 시리아인이 독일에서 난민 자격을 취득해서 정착해 가는 21일 동안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셰누는 시리아에서 아랍어 교사로 일했지만 독일어가 능숙하지 못해 주유소, 식당, 공사장 등을 전전하며 육체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는 타향에서 외로움과 싸우는 한편 시리아에 머물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독일로 데려오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한다.

이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무턱대고 게임을 디자인하기보다 시리아 난민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여기서 얻은 실제 정보를 게임에 반영하기 위해 애썼다. 그 과정에서 게임이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플레이어가 제3자 입장에서 이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임 메커닉을 구성했다.

학기를 마친 후 학생들은 방학 기간에 수정을 거쳐 국내 인디 게임 페스티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BIC)에 게임을 출품했고, 전시작으로 당선됐다.

이 작품의 독특한 문제 의식이 높게 평가받아 최우수 서사 부문상 후보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 정도로 게임을 접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들에게 스팀 플랫폼에 출품할 것을 권유했다.

스팀은 당시 다양한 인디게임이 사용자 투표를 거쳐 출시될 수 있도록 후원하는 그린라이트 제도를 운영했다. '21일'은 이 그린라이트 투표를 거쳐 사용자들의 호응을 받아 6월 17일 무사히 출시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게임 토론장에는 유럽에서 벌어진 이슬람국가(IS) 테러-난민들 간 연관성을 주장하는 게이머들과 난민 인권을 주장하는 또 다른 게이머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게임이 사회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토론과 논의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21일'에 굳이 시리어스 게임이나 기능성 게임 같은 용어는 붙이고 싶지 않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게임의 미디어 본질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21일(21Days)'
'21일(21Days)'

이정엽 순천향대 한국문화콘텐츠학과 교수=elises@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