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생맥주잔을 들고 대기업 총수들과 만난다. 28일에도 이 만남은 이어진다.
정치란 말 그대로 이미지다. 지난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문 대통령은 당내 경쟁자이던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과 생맥주집에서 잔을 부딪치며 연대를 과시했다. 생맥주는 누가 보더라도 서민의 술이고, 뭔가 맺히거나 기쁨이 있으면 들이키는 청량감이 먼저 떠오른다. 생맥주 자체가 '흉금을 터놓고 다 이야기할게'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이런 이유다.
단도직입으로 생맥주 대화라는 형식은 너무 좋다. 국민 누구나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엔 생맥주란 이미지만 남고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아주 무서운 정치가 자리한다. 오죽하면 350㏄짜리 생맥주 만남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앞다퉈 수조원, 수천억원이 드는 시설 투자 계획이나 채용·정규직 전환 약속을 풀어 놓았겠는가.
청와대는 “시나리오나 격식이 없는 만남”이라고 강조하지만 받아들이는 재계 총수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뭐라도 내놓아야 참석할 수 있는, 혹시나 우리 회사가 가장 약한 건 아닌지 치열한 눈치작전까지 필요한 자리로 여기는 것이다.
타이밍도 그렇다. 지금 최저 임금 인상에 이어 확 바뀐 경제 정책 운용 방향, 세제 개편 등 사실상 총수들의 관심은 온통 경영 환경 변화에 쏠려 있다. 총수 개인으로는 얼마나 세금을 많이 내야 하고, 증여세는 25%로 5%포인트(P)나 확 뛰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마음 편하게 허리띠 풀고 생맥주를 들이킬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몇몇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생맥주는 호프로 불린다. 청와대도 '호프 미팅'으로 이번 만남을 명명했다. 맥주 원료인 홉(Hop)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호프 미팅'이란 형식만 자꾸 내세우지 말고 기업들이 진짜 호프(Hope·희망)를 안고 맘껏 뛸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이진호(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