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출범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7일 두 번째 회의를 열었다.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났지만 공론화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 이어 원자력과 관련해 두 번째로 구성된 공론화위다. 그러나 갈등 수위는 사용후핵연료 때보다 높다. 이번 공론화가 과거 사용후핵연료와 다른 점, 진행 중에 주의해야 될 점 등을 전(前)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들로부터 들어 봤다.
◇쉽지 않은 길…양자택일 구조가 갈등 키울 수 있어
“고생이 많을 것이다” “공론화 도중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어려운 과정, 마지막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다”
표현은 달랐지만 신고리 공론화위원회를 바라보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위원들의 반응은 '쉽지 않다'였다. 유독 갈등 구조가 극과 극으로 나뉜 원자력 분야에서 양측의 의견을 끌어내는 책임 수행이 생각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다.
돌이켜보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도 그렇게 순탄하게 걸어 온 것은 아니다. 이 역시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받아 왔고, 원전 주변 지역 의견을 들을 때면 '원전 지은 곳에 핵연료 저장고도 지으려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과격한 대응과 인신 공격성 발언에 눈물을 흘리는 위원도 있었고,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떠난 위원도 있었다. 최초 15명으로 시작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는 권고안 제출 당시 최종 9명으로 활동을 마쳤다.
그럼에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위원들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짧은 공론화 기간과 양자택일이라는 선택의 어려움이 꼽혔다.
A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위원은 “아마 지금쯤이면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 전문가 간담회 등 일정표를 짤 것”이라면서 “실제 공청회를 해보면 알겠지만 각 진영의 의견을 듣기도 상당히 어렵고, 소통 과정에서 많은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15명으로 시작한 사용후 공론화가 지역별 의견 청취에만 걸린 시간이 1년 6개월에 이른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으로는 찬반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계속 건설 또는 영구 중단이라는 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도 어렵다. 사용후 공론화는 일단 쌓여 가는 핵연료 처리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에는 이견이 없었다. 최종 목표점은 정해졌고, 이를 위한 방법론을 찾아 가는 과정이었다. 반면에 신고리 원전 공론화는 건설과 중단은 물론 이보다 더 큰 담론인 탈(脫)원전에 대한 합의도 없는 상황이었다.
B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위원은 “사용후 공론화와 신고리 공론화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아닌 양자택일을 하는 구도에선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금 갈등도 시작에 불과하다고 봤다. 최종 결정을 내리는 시민배심원단이 구성되면 지금보다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등어를 먹으면 안 된다” “국내 원전이 세계 최고다”와 같은 단정하는 의견이 나오고, 공청회는 단상 점거로 제대로 열리기 어려운 곳이 원자력 바닥이라는 평이다.
A 위원은 “중립 입장에서 양쪽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는다면 판이 깨지게 된다”면서 “어마 어마한 갈등덩이를 9명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항상 위협을 받겠지만 의견 수렴을 끝까지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련 전문가 없는 점은 아쉬워…지원단 통해 약점 보완해야
원전 및 에너지 전문가와 지역민 등 관련자가 위원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정부가 공론화 중립성을 위해 비관련자 중심으로 위원을 구성했지만 오히려 관련자는 제외한다는 전제부터 중립성 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C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위원은 “신고리 공론화 위원들의 약력을 보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면서 “공론화 작업을 관리하고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을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고 해도 일부는 전문가가 포함됐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들이 먼저 신고리 5·6호기와 원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야 된다는 제안도 했다. 아무리 결정권이 없고 일정 관리 운영만 한다고 해도 원전에 관해 공부하고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측 의견이 사실인지 과장된 부분은 없는지, 이를 배심원단에 어떻게 전달할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대신 공론화위원회 지원단 구성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표했다. 공론화 위원엔 전문가가 없는 만큼 지원단에는 전문가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화학과 물리, 과학 분야 의원이 있지만 원자력은 같은 과학계라 하더라도 특수성이 있는 만큼 기술 이해도를 돕기 위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관련 사안에 대한 정부의 침묵도 필요 요건으로 제시됐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당시 위원들이 정부로부터 들은 얘기는 당시 장·차관이 언급한 “결론은 받아들이겠다”는 것뿐이었다. 간혹 회의 때 담당 국·과장이 배석한 적은 있지만 당시 정부의 지침에 반하는 얘기가 나올 때도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C 위원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최종 결정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고리 공론화 위원은 그나마 부담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면서 “정부가 침묵을 지켜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고 공론화 위원이 선량한 관리자로 균형만 잘 지킨다면 꽤 괜찮은 공론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 위원이 공통으로 강조한 것은 '소통'이다. 소통은 원자력 갈등 관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이다.
B 위원은 “공청회, 세미나는 물론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도 많이 중요하다”면서 “공론화위 활동과 회의에서 언급된 얘기를 어떤 오해와 비난을 사더라도 공개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통해 계속해서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 과정을 마지막까지 이끌어 가는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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