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발점에 본격 섰다. 내각 구성이 완료됨에 따라 어정쩡하던 '동거 정부'가 해소됐다. 청와대 진용은 물론 당·정 협업 체계도 갖췄다. 100일이 채 안돼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정책인 이른바 제이노믹스의 운용 방향도 발표됐다. 제이노믹스를 간단히 정리하면 최상위에 '경제 민주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양측에 '소득 주도 성장론'과 '사람 중심 경제론'이 버티고 있다.
경제 민주화는 자유시장경제 바탕 아래에서 공정 거래, 적정 분배를 중시한다. 소득 주도 성장은 기업 측을 강조하면 이윤 주도 성장, 근로자 측을 두둔하면 임금 주도 성장이다. 새 정부는 개인 소득 격차가 심해진 현실을 중시하고 임금 주도 성장을 앞세우는 모습이다. 최저 임금 인상이나 서민 복지 지원 확대가 그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윤 증대와 임금 상승이 함께 이뤄지면서 성장을 이끄는 구조로 나가는 것이 건강한 방향이다.
다른 축인 사람 중심 경제론은 수출 대기업 지원을 통한 추격 전략에서 사람에게 투자, 생산성을 높이고 국부를 창출하는 신경제로의 전환을 뜻한다.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안정 성장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구체화한 것이다. 결국 소득 주도 성장론과 사람 중시 경제론은 한데 물려 있는 '기어'인 셈이다. 이 기어를 잘 돌아가게 하는 동력이 4차 산업혁명 정책이다. 이 정책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바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대통령이 주도하는 일자리위원회 등 여러 위원회의 맏형격이라 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실상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기능을 물려받아 결승점까지 가는 '터미네이터'라 할 수 있다.
4차산업혁명위는 일본 경제 정책의 최고 사령탑인 경제재정자문회의와 최근 4차 산업혁명을 가속시키기 위해 출범한 미래투자전략회의와 비슷한 형태다. 경제재정자문회의와 미래투자전략회의의 의장은 총리다. 주요 장관들과 민간 기업 대표, 단체장, 교수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본의 운영 방식을 참고할 만하다.
국내 유력 싱크탱크들과 정책 전문가, 기업인들은 4차산업혁명위에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과학기술정책, 산업정책, 노동정책, 교육정책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위원회가 '정책 플랫폼'을 만들어 줘야 한다. 보건복지, 문화, 국방 등도 이 플랫폼을 쉽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이 플랫폼을 통해 부처 간 울타리를 없애야 한다.
두 번째는 기업과 정부의 소통 및 협업의 마당이 돼야 한다.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과 호프 미팅으로 스킨십을 하는 것은 대단히 필요한 일이지만 정책·전략 수립 공식 채널은 위원회가 맡아야 한다. 특히 재계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 중심의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대신해서 중소기업 중심의 상공회의소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위원회가 정부, 대기업, 중소벤처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위원회가 정부 부서를 결속시키고 때로는 부서를 압박할 수 있는 힘을 대통령이 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위원회가 국회 등 정치권과 당당하게 협력할 수 있는 힘도 여기에서 생겨난다.
마지막으로 위원회 일은 대개가 B2B(정부 대 정치, 정부 대 기업, 부서 대 부서)이지만 그럴수록 B2C(정부 대 국민) 홍보를 강화, 국민의 정책 수용성을 높이는 일이다. 정책을 공급자 위주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확 바꾸는 것이다.
8월은 관료의 여름이라고 한다. 상반기 사업을 깨끗이 정리하고 하반기 사업과 내년도 예산을 미리 챙기는 시기다. 새 정부가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의 조기 집행 계획을 필두로 제이노믹스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어 올해는 한층 무더운 여름이 될 것 같다. 정권 초기에 유능한 관료들을 어떻게 전선에 잘 투입시킬 것인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세계는 지금 대붕괴와 신질서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4차 산업혁명을 국책의 중심 테마로 잡은 것은 시의성과 긴장감을 동시에 보여 주는 것이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