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 업계 담합 의혹이 확산될 조짐이다. 담합 의혹은 독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들이 20여년간 카르텔을 형성해 기술 발전을 늦추고 경쟁을 해친다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담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세계 자동차 시장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31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2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BMW·다임러·폭스바겐을 비롯해 계열사 아우디·포르셰 등 5개사 반독점법 위반을 주장하는 소장이 접수됐다.
원고 측은 미국 운전자를 대표하는 집단 소송을 모색하는 걸로 알려졌다.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지난 1996년부터 최소 2015년까지 반독점법을 어기고, 경쟁적인 기술정보를 주고받는 '5자 서클'을 형성해왔다는 게 원고 측 주장이다. 원고 측은 이들 담합을 통해 독일의 뛰어난 기술력을 구실로 소비자들에게 프리미엄을 요구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원고 측은 독일 자동차 업계가 배출가스 조작을 포함한 자동차 기술의 발전을 제한키로 공모했으며 폭스바겐 배출가스 스캔들도 이런 담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장에서는 컨버터블 루프의 작동, 차체 디자인·브레이크·전자제어시스템 등도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담합한 탓에 기술적 혁신이 저해된 사례로 적시됐다.
원고 측은 폭스바겐에 배출가스 눈속임 소프트웨어를 공급한 보쉬도 소송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제소된 자동차 회사들이 비밀 회합을 통해 특정 부품을 공급해줄 주요 협력업체를 정해 경쟁기업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에서다.
소송은 독일 자동차 업계 담합을 문제 삼아 미국에서 제기된 2번째 소송이다. 지난 22일 뉴저지 연방법원에도 독일 자동차 회사들을 고발하는 소장이 제출된 상태다.
뉴저지주 법원에 제소한 운전자들 역시 독일 자동차 업계가 미국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문화를 조장하고, 지난 20년간 고급차 가격을 올리기 위해 공모하는가 하면 배출가스 기준을 피하기 위한 기술을 공유하는 담합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주장과 함께 이들이 제기한 핵심은 질소산화물을 물과 질소로 바꾸는 용해제 애드블루(AdBlue)를 위한 소형 탱크다. 제작비를 의식해 독일 자동차업계가 미국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것보다 작은 탱크를 장착키로 비밀리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잇따라 제기된 소송은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폭로 기사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인다.
슈피겔은 지난 21일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1990년대부터 디젤차 배출가스 처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사안에서 비밀리에 담합해왔다고 보도했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독일 당국도 즉각 조사에 나선 상태다.
슈피겔에 따르면 이들은 차량 기술, 비용, 부품업체, 시장, 전략에다, 심지어 디젤차 배출가스 처리에 대해서까지 협의할 목적으로 200명 넘는 직원들이 포함된 총 60개 실무그룹을 가동한 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