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공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약 26조원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연말까지 전량 소각한다. 이에 따라 총 214만명의 채무기록이 전산상 완전히 사라진다.

장기간 연체와 추심 족쇄에 갇혀있던 금융 취약층이 오래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31일 금융 공공기관장, 금융권별 협회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소멸시효 완성채권 처리 방안을 마련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소멸시효완성채권의 소각을 통해 상환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추심의 고통에 시달린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서민금융 강화 대책을 실행으로 옮긴 셈이다.
소각 대상은 소멸시효완성채권이다.
정부는 다음 달까지 약 21조7000억원에 달하는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소각할 방침이다. 국민행복기금이 소멸시효완성채권 9000억원(39만9000명)과 파산면책채권 4조6000억원(32만7,000명) 등 총 5조6000억원(73만1,000명) 규모의 연체채권을 소각한다. 금융공공기관도 소멸시효완성채권 12조2000억원(23만7000명)과 파산면책채권 3조5000억원(22만5000명) 등 총 16조1000억원(50만명) 규모의 채권을 소각한다.
아울러 민간(대부업 제외) 보유한 약 4조원(2016년 말 기준·91만2000명) 규모의 소멸시효완성채권도 자율적인 소각을 유도할 방침이다. 이 경우 채무가 탕감되는 인원만 단순 계산으로 약 214만1000명에 육박한다. 대부업체(채권매입추심업자)도 스스로 채권을 정리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최 위원장은 “각 금융업권과 금융공공기관들이 서민금융 지원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달라”며 “이번 조치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제도화와 법제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채무자는 9월 1일부터 본인의 연체가 완전 사라졌는지 여부를 해당 기관 개별 조회시스템 또는 신용정보원 소각채권 통합조회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규모 채무 탕감을 두고 정권 초기 선심성 대책이 되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갚지 않고 버티면 빚을 없애준다는 도덕적해이를 정부가 조장한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소멸시효 완성 채권은 법에 따라 채무자의 상환의무가 없다”며 “불법·편법적 추심 등에 노출돼 피해를 입는 사례를 원천 차단하고자 소각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 용어설명 소멸시효완성채권이란?
금융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상법 제64조)이나, 통상 법원 지급명령 등을 통한 시효연장으로 연체 발생 후 약 15년 또는 25년 경과시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소멸시효 완성시, 채무자는 더 이상 채무 변제의 의무는 없지만 채무자가 일부 변제하는 등의 경우, 시효의 이익 포기로 인정돼채무가 부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