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중 대통령 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달 21일 '4차산업혁명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구성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가보지 않은 미래다. 그렇다면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봉규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장을 7월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새천년관 대학원장실에서 만났다. 이 원장은 2015년부터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할 것을 정부에 제안했지만 당시는 창조경제가 국정기조여서 그런지 “정부가 귀담아 듣지 않았다”며 뒤늦은 대응을 아쉬워했다.
-4차 산업혁명을 우리는 제대로 준비하고 있나.
▲주요국에 비해 준비가 미흡하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에서 규모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를 나타내야 하는데 신제품이나 서비스들이 기존 법이나 규제체계와 상충하는 게 많다. 이 경우 우리가 유연하게 변화를 수용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강국인 우리가 국제표준과 ICT 윤리에서 세계를 이끌고 후진국이나 개도국을 지원하겠다는 비전 등이 미비하다.
-준비는 어느 수준인가.
▲주요국에 비해 뒤져 있다. 반면 후발국 추격을 받는 처지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추격해 이미 주요 첨단기술에서 우리를 앞지르거나 격차를 좁힌 상태다. 세계경제포럼 발표에 따르면 한국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은 세계 25위다.
-곧 출범할 정부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독립기구로 집행권을 부여해야 하나.
▲그런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집행권을 행사하는 위원회를 신설할 경우 정부기구가 과도하게 커진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실질적 실행을 할 수 있게 위원장을 중심으로 부위원장과 해당 부처 간 긴밀한 연계가 가능한 운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성공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뭔가.
▲가장 중요한 게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지속적 관심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기존 분배 위주 워원회와 달리 유일한 산업진흥 위원회다. 산업을 진흥하는 데 대통령의 의지와 관심이 성공 열쇠다. 모든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업무는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위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혁신정책 방향과 내용을 제시하는 총괄 협의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책은 선택이고 미래로 가는 비전프로젝트다. 전 정부에서 초기에 창조경제 개념을 놓고 혼란을 겪었다. 이런 일이 없도록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종합적 국가전략수립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은 융복합 사업과 제도 개선으로 각 부처별 실행계획을 점검하고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 또 과학기술과 인공지능(AI), ICT 성과 창출 강화, 데이터와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교육혁신과 사회 혁신을 위한 합의 도출도 해야 할 일이다.
-주요 각국의 4차 산업혁명 추진 현황은
▲세계 주요 국가는 자국 강점을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에 집중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ICT와 소프트웨어(SW) 기업들이 혁신 서비스를 지속 창출하도록 AI 원천기술 개발, 공공시장 활동 등 직·간접 지원을 한다. 독일은 2011년 이미 인더스트리 4.0을 수립한 후 이를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으로 업데이트해 경쟁력 있는 제조업 분야 혁신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소사이디 5.0을 기치로 내걸고 범정부 차원에서 차세대산업 규제 완화, 신기술 테스트 등 인프라 정비에 착수하면서 새 성장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HW 인프라는 '중국제조 2025', SW 인프라는 '인터넷플러스 전략', 신산업창업혁신은 '중창공간 육성'으로 새로운 경제생태계 창조를 구축 중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가 개선해야 할 법제도는 어떤 게 있나.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이슈화하는 알고리즘 매개성과 권리상충, 제로 레이팅(zero rating) 등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준비해야 한다. 또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하는 O2O 서비스 같은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 등장에 따른 기존 법과 제도와 상충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의료분야를 예를 들면 현 의료제도 큰 틀은 허가주의가 핵심이다. 이런 대원칙은 의료 행위 면허주의와 의료업의 의료인 독점주의, 의료업(수가)의 국가개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환자 지향적 의료를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좀 더 실용적으로 보장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환자의 자기정보 접근과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 개인정보가 침해받지 않는 범위 또는 개인의 현재 건강정보가 미래세대를 위해 더 유용하다는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개인정보를 빅데이터로 활용해 연구하거나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대학, 기업간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일부 대기업 독주가 아닌 기존 퍼스트 팔로우(first follower)와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정부는 민간이 추진하기 어려운 기초과제와 재도 개선에 집중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정한 경쟁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은 4차 산업혁명에 부응하는 맞춤형 전문 기술인력 양성 등에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 대기업은 공격적 R&D 투자를 통해 기술력과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벤처기업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혁신기술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AI가 어느 시점이 오면 인간지능을 뛰어 넘는다는데.
▲사전에 가이드라인 제정과 법제도 정비로 그런 문제를 충분히 방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규제보다는 육성이 필요하다.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은 강한(strong) AI보다는 자율주행차나 지능형 롯과 같은 약한(weak) AI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군은 무엇인가.
▲단순, 반복 표준화가 가능한 업무를 대체할 것이다. 맥킨지는 2016년 노동시간 중 최대 49.7%를 자동화로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시장을 로봇이 대체하면 실업문제가 등장하지 않을까.
▲지능정보기술은 업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산업에 활용할 것이고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상도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이다. 반면에 데이터 분석가, 인공지능 전문가, 코딩 엔지니어 등 지능정보관련 신산업 및 융합산업에서 필요한 일자리도 늘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실업문제는 새로운 신산업의 새 일자리 창출과 사회, 경제 제도 보완으로 해결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평생교육을 해야 한다. 기본적인 과학과 기술. 공학. 수학뿐만 아니라 사회 정서학습 기술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그러자면 평생학습을 통해 21세기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획일적 교육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변해야 하며 학제개편은 큰 틀의 변화보다 현실적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교학점제, 무학년제 등을 통해 학생들의 자율적 역량 개발과 미래준비를 지원해야 한다. 또 SW교육을 비롯한 핵심 역량을 초중고 교과과목에 반영하는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유망기술은 무엇인가.
▲분야마다 다르다. 4차 산업혁명 핵심인 지능정보기술은 기반기술, 핵심기술, 시스템. 플랫폼 등 응용기술로 계층화하며 초연결성, 초지능성 특징을 지니고 있다. 기반 기술에 해당하는 네트워크(IoT, 5G), 데이터(Cloud, Big Data), 인공지능 SW(기계학습, 알고리즘) 등은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범용기술이다. 이런 범용기술 기반 구축과 초기 확산, 산업 연계가 핵심이다. 이에 비해 3D프린팅, 유전자가위 기술 등 분야별 핵심기술은 범용기술이 아니라 제조, 의료 등 특정 분야에 주로 사용한다.
-4차산업시대 인재는 어떤 유형인가.
▲반복하는 노동은 로봇이, 창조적인 일은 인간이 나눠 서로 공존하고 협력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에겐 창조성이 더욱 필요하고 창조성과 감성을 바탕으로 협력하는 인간상이 중요하다. 즉, 로봇에게 노동을 넘겨주고 의미와 재미있는 업과 놀이에 집중하는 인간형이 필요하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법이나 규정이 없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기본법을 새로 제정하거나 아니면 기존 기본법을 개정하는 방안이 있는데 기존 국가정보화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지능정보화로 상당 기간 병립이 가능해 기존 기본법 개정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개별법 차원의 정비 방식이 혼란을 최소화한다고 본다, 다만 전반적 개별 입법의 상이함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 프레임워크는 사회적 합의 하에 도출할 필요가 있다.
-좌우명과 취미는.
▲학자로서 가르치고 배우면서 같이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 좌우명이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지 않은가. 취미는 강아지와 산책하기다.
그는 공부하는 교수다. 분야가 다른 대학 교수들과 공부모임을 만들어 매주 만나 주제를 정해 토론한다. 그런 공부모임이 4개다.
이 원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 정보대학원 부원장과 방송통신정책연구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정보통신부 통신위원과 한국인터넷정보학회장, 미래창조과학부 ICT정책고객대표자회의위원, 국무총리 소속 정보통신전략위원회 실무위원, 서울시 정보화전략자문위원, 글로벌ICT포럼의장, 방송통신위원회 자체평가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국무총리 표창과 대통령 표창, 근정포장,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현덕 대기자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