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의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와 26개 공공기관에서 독자 운영하고 있는 전자조달시스템의 통합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이 발주하는 공공 조달 규모는 연간 118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나라장터가 전체의 63%인 75조원을 발주하고, 나머지 43조원이 26개 기관의 전자조달시스템으로 발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별 유사 시스템 운영 방식으로 말미암아 시스템 유지관리 비용이 중복 투입되는 등 국가 예산 낭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용자 편의성, 보안 등 측면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 통합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조경태 의원(자유한국당)은 일부 공공기관에서 자체 운영되고 있는 전자조달시스템을 나라장터로 통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전자조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조달시스템 운영 형황
나라장터는 조달청이 전 공공기관의 조달 업무 전자화를 위해 2002년 구축한 전자조달시스템이다. 조달업체 등록부터 입찰, 계약 체결, 보증금 수납, 대금 지급 등 조달 업무 전 과정을 전자적으로 처리한다.
현재 모든 공공기관의 입찰 정보가 나라장터에 공고된다. 나라장터를 이용하는 업체는 1회 등록만으로 어느 공공기관 입찰에나 참가가 가능, 공공 조달 단일 창구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다.
나라장터를 이용하지 않는 공공기관도 있다. 한국전력공사, 코레일 등 26개 기관이다. 이들 기관은 나라장터와 별개로 자체 전자조달시스템을 구축,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시스템 기능은 나라장터와 거의 유사하다. 물품, 공사, 용역 등 입찰·계약 창구로 활용된다.
인천공항공사와 한국도로공사 등 일부 전자조달시스템은 각 기관의 고유 업무에 특화된 기능을 추가로 제공한다. 인천공항은 공항 내 상가 등 임대·매각 업무 입찰을 전자조달시스템으로 수행한다. 도로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도 각각 휴게소 내 주유소 등 관련 입찰과 원전연료 계약 입찰을 자체 시스템으로 수행한다.
물품 분류 코드는 26개 시스템 가운데 코레일,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9개 기관의 시스템만 나라장터 물품 분류 코드를 적용할 뿐 나머지는 자체 물품 분류 코드를 사용한다.
◇시스템 고도화·유지비용 중복
나라장터와 유사한 26개 전자조달시스템의 개별 운영으로 비용·인력, 이용자 편의성, 보안 등 측면에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국가 예산 낭비 초래다. 시스템 별도 운영 과정에서 고도화 및 유지 관리 비용이 중복 투입되고 있다.
조달청이 26개 전자조달시스템 가운데 24개 시스템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시스템당 평균 7억8000만원의 구축비용이 들었고, 구축 이후 평균 1.6회의 고도화 사업이 추진됐다. 이 가운데 6개 시스템은 현재 고도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거나 내년에 추진될 예정이다.
시스템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다. 시스템당 연간 유지 비용(2016년 기준)만 3억900만원이나 된다. 전체 기관의 유지비용을 합치면 93억원에 이른다. 시스템 유지·보수 인력은 기관당 6.2명으로, 24개 기관을 모두 합치면 140명이 넘는 인원이 시스템 운영에 투입되는 셈이다.
이용자 불편도 만만치 않다. 많은 조달업체가 나라장터와 26개 기관의 조달 시스템을 중복 이용하는 실정이다.
조달청이 2014년 실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자체 조달 시스템 이용 업체 가운데 나라장터를 중복 이용하는 업체는 전체의 95%다.
이들 기업이 해당 기관의 전자조달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각 기관에서 규정하는 준비 서류를 각각 따로 준비해야 한다. 입찰 절차와 로그인 방식도 각기 달라서 전자조달입찰 등록 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보안 프로그램도 시스템별로 다르고, 프로그램 오류 등 장애 발생 가능성도 상존한다.
◇국회·감사원도 통합 필요성 제기
국회 및 감사원에서는 국가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2011년부터 26개 개별 전자조달시스템과 나라장터 통합 필요성이 지속 제기돼 왔다.
김성조 의원은 2011년 나라장터가 아닌 개별 기관의 자체 조달 시스템 이용으로 연간 57억여원의 혈세를 낭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2012년 감사원 감사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나라장터를 놔두고 자체 조달 시스템을 만들어 비효율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감사원은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한 정보기술(IT) 감사에서 투찰 인터넷프로토콜(IP) 저장 기능이 없거나 동일 IP 차단 기능이 없는 개별 시스템을 운영, 공공 조달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8개 기관에서 운영되고 있는 자체 조달 시스템의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통합 방안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국회와 감사원의 지적에도 아직까지 26개 기관의 움직임은 미적지근하다. 기관별 특수성을 감안한 전자조달시스템이라는 점을 내세워 통합을 주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경태 의원은 전자조달시스템 통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전자조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전자조달의 이용 및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일부 공공기관에서 자체 운영되고 있는 전자조달시스템을 나라장터로 통합하는 것이 주 골자다. 일정 요건을 갖추지 못한 개별 기관의 자체 전자조달시스템의 신규 구축 및 운영을 금지하고,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 또한 기준 미달 시 나라장터로 전환토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조경태 의원은 “지금까지 일부 기관이 자체 운영해 온 조달 시스템은 투명성과 공정성이 결여된다는 지적과 함께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면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조달 시스템 일원화로 예산 절감뿐만 아니라 국민 편익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