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4>결론은 '답정너'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4>결론은 '답정너'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 해.' 인터넷 신조어란다.

'사이다' 같은 결론을 원하며 고민을 털어 놓는 이들이 있다. 자기가 내린 결론보다 내가 내린 결론이 뚜렷해서 좋다며. 어떤 이는 자기 속내를 어찌 그리 정확히 파악하느냐고 한다. 내게 신기가 있는 것 같다고도 한다.

그들은 몰랐다. 내가 그들의 속내를 파악하고 분석해서 결론을 짓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들 마음 속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듣고 이미 내린 결론에 긍정언어를 실을 뿐이다. 답이 정해져 있기에, 그들에게 '사이다' 결론을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답을 찾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니라 위안과 동조를 얻고 싶은 마음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후배 S가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찾아왔다. 그녀는 신랑 될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신랑 될 사람은 결혼 날짜를 받아둔 상태에서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녀에게 말 한마디 없이. 평생 샐러리맨으로 살다가는 큰돈을 모을 수가 없다, 주식으로 돈을 벌겠다고 했단다. 증권사 취직하겠다는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재택근무를 한단다. 말이 좋아 재택근무지 '백수'나 게으른 '개미' 중간쯤의 직업을 갖겠다는 말이었다. 극구 반대하니 딱 1년만 지켜봐 달라, 반드시 벌겠다, 실패하면 바로 취직하겠다고 맹세했다는 것이다.

후배에게 네 고민이 뭐냐고 물었다. 불안하다고 했다. 후배를 떠봤다. “남자친구 말대로 주식해서 큰돈을 벌수도 있잖아?” 후배는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속마음을 되물었다. “그래도 돈을 벌면 좋지? 네 신랑은 잘 할 것 같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4>결론은 '답정너'

오래 전 M선배는 유부남을 사랑했다. 처음부터 유부남인 줄 알았던 건 아니었다. 이미 사랑을 느낀 후였고 남자는 이혼을 하겠노라고 했다. 남자에게는 딸도 하나 있었다. 선배는 남자 말을 믿고 이혼하기만을 기다렸다. 오래가지 않아 가족, 친구, 선후배가 알게 됐다. 모두 말렸다. 왜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느냐고, 헤어지라고 종용했다. 선배는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걸 감수하겠다고 했다. 남자 딸을 아끼며 키울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내게도 찾아왔다. 모두가 반대하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나도 반대했다. 너만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며 차갑게 돌아섰다. 조언이란 게, 동조가 아니면 적의 독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M선배나 S후배는 '답정너'를 원했다. '답정너'는 원하는 말을 듣고 싶은 심리상태를 대변한다. 그녀들이 원하는 대답은 정해졌고, 그 대답을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반대파'가 된다. '답정너'를 요구하는 사람 앞에서 선택이나 분석은 필요 없다. 회사를 그만 둘지 말지 묻는다는 것은 이미 회사에 대해 마음이 떠났다는 의미다. 이혼을 고민하는 행위는 배우자에 대해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4>결론은 '답정너'

정치권도 비슷하다. 정치지도자 결정에 반대하는 순간 '정적'이 된다. 우파나 좌파 모두 그렇다. 자기 소신과 관계없이 무조건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하는 '처신의 귀재'들이 정치권에서 장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집단은 그러면서 수시로 소통하자 한다.

'답정너'를 찾는 것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줄 공범을 찾는 행위일 뿐이다. '답정너'는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다.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은 수용과 분별이 전제다. 적어도 문제에 대한 본질을 원한다면 '답정너'로 물어선 안 되고, 그렇게 대답해서도 안 된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