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가 통상임금 소송 1심 재판에서 패하면서 산업계와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현재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115개 기업 뿐만 아니라 향후 각 사업장과 노조에서 유사한 통상임금 소송이 잇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와 재계에서는 법원의 이번 판결로 최대 38조원에 달하는 추가 노동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지는 소송 대란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5년간 32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기준으로 인해 소송 과정에서 혼란과 각종 왜곡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불거진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2013년 갑을오토텍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기업이 부담하는 추가 비용 규모가 최대 38조550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비슷한 시기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기업의 노동 비용 증가액은 최대 21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번 판결로 기아차가 부담해야 하는 1조원 이외에도 현재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서울메트로, 기업은행, 현대모비스,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제철, LS산전, 쌍용자동차, 강원랜드, 현대로템, STX조선해양, 현대위아, 효성, 두산엔진, 두산중공업, 한화테크윈, 현대차, 한국항공우주산업 등도 줄줄이 재판을 앞두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이번 판결에 전전긍긍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 정기상여금 등 통상임금 범위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2013년 이후 올해 6월말까지 통상임금 소송을 겪은 100인 이상 사업장 192개 가운데 절반가량은 종업원 300인 미만 중소기업이다.
당장 소송이 걸려 있지 않은 기업까지도 기아차 1심 결정에 우려하고 있다. 이날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통해 “이번 결정으로 완성차업체에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협력업체로 전가할 수 있다”며 “특히 자동차부품산업의 근간 업종인 도금, 도장, 열처리 등 뿌리산업 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가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는 지난해 자유경제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노동소득분배율이 1.3%포인트(P) 상승하면 연 경제성장률이 0.13%P 하락해 5년간 총 32조6748억원의 국내총생산 감소 효과가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국내총생산의 감소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인해 우리 국민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고 없어져 버리는 사회후생의 순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산업계 안팎으로 불거지는 당장의 비용 부담보다 더 큰 문제는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통상임금 소송은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발생시킬 경우 신의칙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2013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과 '신의칙'의 해석을 두고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면서 대법원은 시영운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살피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이 미뤄지다 보니 당장 재판을 앞둔 기업들은 대응 방안조차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통상임금의 정의 규정이 없어 같은 사건도 심급에 따라 정반대의 판결이 선고되는 등 재판부에 따라 판결이 일관되지 못해 예측가능성을 저해하고 새로운 노사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해 여전히 갈등과 혼란이 지속 중”이라며 “노사정 논의를 통해 통상임금제도의 명확성, 예측가능성을 향상하는 방향에서 근로기준법의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와 재계에서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신의칙' 관련 세부 기준의 시급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