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는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을 계기로 선진국처럼 통상임금 규정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기아차와 같은 소송이 현재 115개사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통상임금 관련 입법이 지연되면 노·사 소송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한미국상의는 “통상임금 정의를 명확히 한 법 규제 없이는 외국 기업들의 한국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동차산업협회도 “법에 통상임금 포함 범위가 아예 규정돼 있지 않은 탓에 (노조 측이) 불로소득 성격의 추가 소득을 얻기 위해 통상임금 문제를 쟁송화했다”고 주장했다.
◇기준도, 규정도 없는 통상임금 소송전
우리나라 임금 체계는 외국과 달리 정기상여금이 높은 구조로 되어 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이를 기초로 산정되는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연차수당, 퇴직금이 증가한다. 특히 업종 특성상 연장·야간·휴일 근로가 많은 자동차 산업은 통상임금에 따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외국은 연장·야간·휴일 등 구분 없이 단일로 50% 할증만 적용하지만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상 50%씩 중복 할증이 적용된다. 이처럼 통상임금 개념과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노사 간 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의 산정 기초가 되는 중요한 임금 결정 기준이지만 정의, 산입 범위에 대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정기상여금 등을 포함한 대법원 판결 이후 법정 분쟁이 확대되고 있다.
김용근 자동차산업협회장은 “일본은 노동기준법 시행규칙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어 법정 쟁송 대상이 되지 않고 엄중하게 준행되고 있다”면서 “통상임금 기준과 범위 등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법에 통상임금 포함 범위가 규정돼 있지 않은 탓에 1988년 노동부가 '매달 지급하지 않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을 행정 지침으로 만들어 업계를 지도해 왔다. 이에 통상임금 쟁점이 관련법의 모호성에서 나온 것임을 감안, 정부나 입법부에서도 조속히 노동부 행정 지침을 유지하는 선에서 입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계·협회·단체·국회까지 '통상임금 규정' 마련 촉구
최근 대한상의는 통상임금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국회에 요구했다. 통상임금 판결 분쟁이 지속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촉구한 행보다. 대한상의 측은 “통상임금 개념과 기준을 명확히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면서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의 산정 기초가 되는 중요한 임금 결정 기준이지만 그동안 정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재계 의견을 전달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통상임금 관련 입법이 지연되면 앞으로 노·사 간 소송의 소지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통상임금 정의와 제외되는 금품의 기준을 법에 규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상의도 통상임금 정의나 범위가 법제화되지 않는 한 외국계 기업의 한국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미국상의는 “정부는 통상임금 정의를 명확히 규정하고, 한국의 사회·경제 구조 현실에 기반을 둔 법제도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주한 외국 기업의 약 절반이 과도한 노동 규제 시 한국에 대한 투자 축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회도 관련 정책 마련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8월 28일 여야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전체회의에서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적극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장병완 산자위원장(국민의당)은 “통상임금 부담으로 완성차·부품사에서 2만3000명의 일자리 감소가 우려되고, 재계는 38조원의 추가 비용 부담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며 “한국GM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후 3년 동안 5000억원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한 데다 심각한 판매 부진까지 겹쳐 공장 철수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