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트럼프 "한미 FTA 폐기 검토" 발언…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검토하겠다'고 언급하면서 발언 배경과 향후 전망에 관심이 집중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 공조를 확인하는 전화통화를 한 지 이틀도 채 안된 시점이어서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트럼프 특유의 협상전략이라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협상 당사자인 우리 정부로서는 가볍게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를 '일자리를 뺏는 나쁜 FTA' 등으로 규정했다. 수시로 폐기 혹은 재협상 카드를 언급하며 한국 정부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하지만 실행 수위는 당초 예고보다 낮았다. 재협상이 아닌 '개정협상'으로 이어졌다.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가 지난달 22일 미국 요구로 서울서 열렸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특별회기는 한미 양국 간 의견 차만 확인한 채 이렇다할 합의 없이 종료됐다.

미국은 특별회기에서 한미 FTA 이후 미국 상품수지 적자 확대와 자동차·철강·정보통신(IT) 분야 무역 불균형 심화 등을 들어 협정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우리 측은 미국 상품 수지 적자는 한미 FTA가 원인이 아닌 만큼 우선 FTA 효과와 미국 무역수지 적자 요인에 대한 조사 분석을 먼저 하자고 맞섰다.

양국 입장 차가 뚜렷하게 대립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FTA 재협상과 개정이 아니라 아예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미국은 앞으로 한미 FTA 개정을 위해 더 이상 추가 협상을 하지 않고, 곧바로 폐기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초강수 카드다.

한미 FTA 효과 분석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기 보다는 우리나라를 재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압박하는 전략적인 발언으로 풀이된다.

후속 조치도 발 빠르게 이어질 전망이다. 현지 통상 전문매체는 트럼프 정부가 오는 5일 폐기 절차를 개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한미 FTA 폐기 절차에 돌입할 경우, 우리나라에 FTA 폐기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협정은 180일 후에 자동 폐기된다. 우리 측은 서면 통보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고, 이 경우 양국은 요청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협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후속 절차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FTA 개정 또는 재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협상용이라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악관이 정말로 FTA 폐지를 고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FTA 문제를 협상 테이블로 가져가기 위해 위협 전략으로 사용하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한미 FTA 개정과 관련해 양국 회의가 불과 한 차례밖에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섣불리 폐기 절차에 돌입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심각한 균열을 초래한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더욱이 한미 양국은 지난 1일 밤(한국시각) 정상 간 전화통화를 하고 북한 도발 등에 공조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통화에서 한미 동맹을 계속해나가기로 했다. 이날 통화에서 FTA 관련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재확인된 만큼 미국 측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철저히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미 FTA 페지 검토와 관련한 현지 외신 보도 내용은 잘 알고 있다”며 “이미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브리핑시 밝혔듯이 미국 측과 열린 자세로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한미 FTA 폐기 여부와 관련한 언급 없이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발표할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