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위협받는 한국 배터리 산업

독일 신생 기업 테라E는 17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이끌며 2028년까지 연간 34기가와트아워(GWh) 규모의 대형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독일 연방교육연구부도 520만유로(약 70억원)의 자금을 지원한다.

영국 정부는 전기차용 배터리 연구개발(R&D)을 위한 '패러데이 챌린지'에 4년 동안 2억4600만파운드(약 36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2035년까지 에너지 밀도를 두 배로 높이고 가격은 절반 이상 낮춘 배터리 개발이 목표다.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이후 유럽 각국은 내연기관차 규제와 친환경차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완성차 업계도 로드맵을 내놨다. 유럽 전기차 시장 확대는 국내 배터리 업계엔 호재로 인식됐다. 현재 유럽 주요 완성차 업계의 배터리 공급사가 국내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도 작용했다. 세계 최대 중국 전기차 시장 공략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유럽 의존도도 높아진 상황이다.

독일과 영국의 전기차 배터리 독자 개발 움직임에 경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디젤차 퇴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유럽 국가들 입장에서는 전기차 핵심인 리튬이온배터리의 패권을 한국과 일본 업체가 쥐고 있다는 점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특히 유럽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독일은 기반 기술이 막강한 나라다. 납축전지와 니카드전지 시절에 배터리 강국이기도 했다. 납축전지 시대 선배들이 은퇴하면서 젊은 개발자들이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도 갖춰졌다. 독일 자동차 부품 업체 보쉬는 삼성SDI와 4년 동안 합작사를 운영하면서 이차전지 기술력도 흡수하고 결별한 전력도 있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사방이 적이다. 미국 테슬라는 세계 최대 리튬이온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고 있다. 일본 파나소닉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광산부터 완성차까지 수직 계열화하며 '배터리 굴기'에 나선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협소한 내수 시장이 아킬레스건인 국내 기업은 압도하는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고용량화, 충전 시간 단축, 안전성 강화 방향으로 진화하는 전기차 배터리 성능 개선에 맞춰 새로운 소재와 부품 전략을 짜야 한다. 킬로와트아워(㎾h) 당 100달러 이하라는 가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가팩토리 등 규모의 경제 전략도 고려할 때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