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산업이 4차 산업혁명 열풍을 타고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산업 활성화가 더뎌 시장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과 독일 등 제조업 선진국 로봇 기업이 시장을 선점하면서 진입 장벽이 점점 높아져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로봇 산업 이륙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제로봇연맹(IFR)은 세계 산업용 로봇 수요가 2019년까지 연평균 1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로봇 산업은 제조 현장에 투입되는 산업용 로봇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용 로봇 시장으로 양분됐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같이 첨단 산업, 전통 제조업 라인에 들어가는 로봇은 산업용 로봇에 속한다.
전체 로봇 산업에서 산업용 로봇 비중이 서비스용 로봇보다 더 크다. 2015년 기준 산업용 로봇 시장은 111억3300만달러, 서비스용 로봇 시장은 68억1600만달러로 각각 추산된다. 연평균 성장률에서도 산업용 로봇이 14%로 서비스용 로봇 성장세(12%)를 소폭 앞섰다.
4차 산업혁명 흐름에 맞춰 로봇 산업의 중요성은 점점 부각되고 있다. 첨단 산업에 투입되는 자동화 설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 모두 로봇 산업과 결부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HW) 기술력뿐만 아니라 AI, 로봇 제어와 같은 소프트웨어(SW) 기술 노하우도 필요하다.
그러나 선진국 로봇 기업이 세계 시장 패권을 다투는 사이 한국 로봇 산업은 자취를 감췄다. 세계 10대 산업용 로봇 기업 안에 꼽히는 기업이 전무하다. 차세대 유망 시장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자료를 인용, 한국과 미국 간 로봇 기술 격차를 4.2년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을 필두로 일본과 유럽연합(EU)는 1.4년, 중국은 7.1년 각각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 로봇 산업 경쟁력 키우기 혈안
미국 정부는 로봇 산업을 중요 미래 산업으로 지목하고 육성해 왔다. 미국은 2011년 제조업 분야의 고용 창출,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첨단 제조업 파트너십'을 발표한 바 있다. 로봇은 4대 중점 과제의 하나로, 안보·첨단소재·제조공정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EU도 로봇 시장 점유율 확보에 나섰다. 2014년에 로봇 분야의 세계 최대 민·관 협력 사업인 '유럽 로봇 산업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내놓고 세계 시장 점유율을 35%에서 2020년 42%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은 선진 기업 인수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이 투입한 로봇 기업 인수 금액은 지난해 89억달러로 세계 글로벌 로봇 제조 기업 인수합병(M&A) 금액의 절반을 차지했다. 한 예로 중국 메이디그룹은 지난해 세계 3위 기업 쿠카를 인수,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업계에서 쿠카 기술력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평가된다. 인수 금액으로는 51억달러가 투입했다.
중국 정부는 '로봇산업발전계획(2016~2020)' '제13차 5개년 과학혁신계획'을 앞세워 로봇 산업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성장 모멘텀 필요한 한국…대기업 속속 진출
한국 로봇 시장은 최근 대기업 진출이 활발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산업용 로봇 시장을 중심으로 대기업이 신규 사업 진출을 잇달아 선언했다. 올해 들어 한화테크윈, 두산로보틱스가 협동로봇 시장에 진출했다. 로봇 시장 성장이 두드러지면서 대기업의 로봇 시장 진출에 속도가 붙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산업용 로봇 시장 선발 주자인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중공업 지주회사로 올라섰다. 신사업인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삼은 것은 현대그룹 차원에서 로봇 사업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021년까지 세계 5위 로봇 기업,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앞으로 대기업 로봇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대기업의 자본력과 브랜드 파워를 등에 업고 글로벌 로봇 기업과 경쟁할 여지가 생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카, ABB, 화낙 등 세계 로봇 기업들의 매출 규모는 조 단위 수준이다. 앞선 기술력과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 패권을 노리고 있다. 스위스 ABB의 매출 규모는 연간 100억달러(약 11조원)에 이른다.
국내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맏형 격인 현대로보틱스의 지난해 매출은 2500억원선이다.
◇업계 “로봇 정책 위상 격상, 통 큰 지원 필요”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 규모가 작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래 유망 산업 가운데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산업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래 주요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업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예산안을 보면 로봇 관련 예산은 1487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예산(약 1600억원)보다 소폭 감소했다. 산업부의 내년도 전체 예산이 올해 6조9695억원에서 6조7706억원으로 3%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내년도 로봇 R&D 예산이 평년 수준(700억원대)으로 돌아온 것도 한몫했다.
참고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SW 전문 인력 양성, SW 융합 생태계 조성에만 1669억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다. 산업의 시장 크기, 부처별 예산 규모가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로봇 산업이 제조업과 SW 기술이 결합된 융합 산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통 큰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조영훈 한국로봇산업협회 이사는 “정부가 로봇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로봇 시장 규모를 키우기 위해 오랜 기간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4차 산업혁명에서 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업계가 스퍼트를 낼 수 있도록 더욱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