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총 사업체의 99%를 차지하는 중소·벤처기업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중소기업 위상지표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14년까지 중소기업 고용 비중은 75.1%에서 87.9%로 증가한 반면에 대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9%에서 12.1%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부가가치 창출 비중은 지난 50년간 지속 감소해온 반면 중소기업 부가가치 창출 비중은 1960년대 24%에서 2010년대 82%로 증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로 중소기업 중요성은 커질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주요 기술이 기존과 전혀 다른 형태의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보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새로운 틈새시장을 민첩하게 공략할 수 있는 작은 조직이 급격한 변화 대응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내 중소기업을 둘러싼 법·제도는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작은 조직의 강점을 활용해 중소기업이 4차 산업혁명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갈 수 있도록 법·제도가 설계돼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중소·벤처기업을 둘러싼 기존 규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핀테크, 블록체인, 빅데이터, 3D 프린팅 등 새로운 기술은 기존 시장과 비즈니스 모델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가령 3D 프린팅 기술이 보편화되면 원하는 제품을 즉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물품을 쌓아두거나 관련 부품을 운송할 필요가 없게 된다.
따라서 기업 핵심 역량도 기존 제조에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3D 프린팅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설계도를 누가, 얼마나, 더 많이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러한 상황이 도래하면 기존 제조 시스템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한 대기업은 기존 시장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급격한 기술변화에 대한 수용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대기업과의 직접 경쟁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틈새시장이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중소·벤처기업 입장에서는 신기술 활용이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요건이 될 수 있다.
명문화된 조항만을 허용하는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은 중소·벤처기업의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고 있다.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명문 조항으로 법제화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과 제도 간 미스매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
낡은 규제 프레임으로 새로운 시장과 비즈니스 모델을 제한하기 보다는 특별히 금지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최근 드론 운용범위나 자율주행자동차 임시 운행구간이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실질적인 운영 제약이 없어진 것처럼 중소·벤처기업이 느끼는 규제 애로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촉진하기 위한 각종 법안도 조속히 처리해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애로사항으로 느끼는 규제의 상당 부분은 입법 미비에서 기인한다. 법·제도 발전이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기술 융·복합화로 창출되는 새로운 시장을 과거의 법·제도로 규제하는 아이러니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
현재 국회에는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개발과 산업발전을 지원하는 내용의 많은 법령이 계류돼 있다.
대표적으로 '지능정보사회 기본 법안'은 인공지능 기술의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발전을 지원하는 내용을, '디지털 기반 산업 기본법'은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기존 일자리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는 내용을 각각 담고 있다.
빅데이터의 산업적 이용을 촉진하는 '빅데이터 산업 진흥법'과 핀테크·인터넷 금융 활성화를 위한 '인터넷 전문은행 특별법', 소프트웨어 범위 재정립 관련 교육 강화를 골자로 하는 '소프트웨어 진흥법'도 국회에 묶여 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창업도 활성화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여러 기술의 융·복합화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만큼 많은 벤처창업이 일어나면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실험될 수 있는 장이 형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대보증이 전면 폐지되고 기술 가치 평가에 기반 한 투자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
그간 대출·보증 시 채권 회수를 담보하기 위해 대표이사, 최대주주, 지분 30% 이상 보유자 등 기업 실제 경영자의 연대보증을 요구해 많은 연대보증인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다행히 최근 정책 금융은 창업기업에 대한 연대보증 범위를 축소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가 금융의 다수를 차지하는 은행권 대출 시 연대보증이 중소·벤처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은행법 등이 조속히 처리되고, 연대보증을 보완할 수 있는 정교한 기술가치 평가모델이 확산·보급돼야 한다.
안준모 서강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중소·벤처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면서 “규제 수용 비용을 과감히 낮춰 새로운 혁신에 도전하는 중소·벤처기업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