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은 국가가 미래로 향하는 핵심 원동력이다. 국가 전반에 해외 선진국과 겨룰 수 있는 과학기술 기반을 마련해 준다. 때문에 R&D 혁신이 매번 대선에서 단골 공약 주제로 활용됐다. 연구비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중장기 연구를 장려해 국가 R&D를 바로 세우겠다는 약속이 넘쳐났다. 세계적인 연구 성과 도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현실화는 매번 미뤄졌다.
우리나라는 R&D 예산 규모 19조4000억원에 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예산의 양이 질을 담보하지 못했다. 당초 기대와 달리 R&D는 소외됐고, 기초·중장기 연구는 미진했다. 그렇다고 응용연구가 활성화 되지도 않았다. 연구 사업화율은 2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전 후보 공약에서부터 국가 R&D 혁신과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과기분야 컨트롤타워 부활을 약속했다. 과학기술인이 스스로 나서 R&D 예산을 배분하는 체계 구축도 공약했다. 국가 R&D 관련 권한을 집중해 혁신의 파급력을 배가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런 전략은 최근 가동한 '과학기술혁신본부'로 구체화됐다. 정부는 차관급인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국무회의에 배석시키고, 예산 관련 권한을 부여할 예정이다. 핵심은 R&D 예비타당성조사 권한 및 기관별 지출한도(실링) 설정 권한이다. 기획재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이들 권한을 가져온다. 기존 체계가 기술 개발에도 일률적으로 비용 편익 분석 잣대를 들이대는 등 R&D 투자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권한의 근간이 되는 법령 개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주요 법령인 국가재정법·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았다. 정부는 연내 개정안 처리를 완료할 방침이지만 과기혁신본부 신설 취지가 퇴색됐다.
전문가들은 이들 법령의 조속한 처리로 과기혁신본부가 부처별로 흩어진 기초, 원천 R&D 기능을 모으고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상선 한양대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예타 권한 및 예산 실링 설정 권한은 과기혁신본부가 생겨난 존재 이유”라면서 “이것이 선결과제로 조속한 시일 안에 확보되지 않으면 국가 R&D 혁신은 요원해진다”고 말했다.
추가적인 법령 개정을 재촉하는 의견도 많이 관측된다. 대통령 취임과 R&D 혁신 구상, 과기혁신본부 출범까지의 과정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면서 관련 법령 정비에 놓친 부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재정법' 11조 1항이다. 이 조항에는 '예산결산 및 기금에 관한 업무는 기획재정부장관이 관장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관련 개정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과기혁신본부의 기능과 역할을 단서 조항으로 추가하거나,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과기혁신본부의 컨트롤타워 역할 수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3개 국을 둔 현 과기혁신본부 직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주를 이룬다. 과기혁신본부 산하에 과학기술정책국, 연구개발투자심의국, 성과평가정책국만을 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하고, 산하에 실장 및 조정관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기정통부에 속한 본부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와 같은 부처의 R&D 업무까지 관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특히 임대식 신임 과기혁신본부장의 경우 관료 출신이 아닌 현장연구자 출신으로, 행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과기 컨트롤타워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차관과 비교해 조직 규모가 작다는 것도 확대 주장의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직제는 2실 1국, 2차관은 1실 3국 체제로 이뤄져 있다.
이밖에 혁신본부에 각종 연구성과 활용을 위한 사업화 관련 기능을 담을 수 있도록 전담 조직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기능 강화도 4차 산업혁명시대 대응을 위한 주된 법령 개정 대상이다. 자문회의는 과학기술 관련 정부의 혁신 정책, 국가 R&D 관련 사항을 담당한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국과심), 과학기술전략회의(과기전략회의)의 역할과 기능을 흡수한다. 국과심은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비롯해 각종 주요 정책을 수립하는 곳이다. 과기전략회의는 박근혜 정부 시절 만들어진 회의기구다. 세 기관이 모여 과기혁신본부와 더불어 새 정부 R&D 혁신의 핵이 된다.
전문가들은 통합된 자문회의가 심의·의결기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과기계가 세운 R&D 예산에 대해 외부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2001년 제정 후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과학기술기본법, 각종 R&D 규제에 대해서도 손질이 요구된다.
임춘택 광주과기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학기술과 국가 R&D 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현 정부의 혁신 움직임에 맞춰 조속한 처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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