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모든 가전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탑재한다는 차세대 스마트홈 생태계를 제시했다. 같은 목표를 향해 전진하지만 방법론에서는 다른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독자 기술을 전면에 배치한 삼성전자와 타 업체와의 협업으로 '동맹' 체제를 강화하려는 LG전자의 행보가 서로 다르다. 가전 시장에서 선두 기업들의 사업 전략이 갈리기 시작하면서 누가 승기를 잡을지 이목이 쏠린다.
◇빅스비와 타이젠 앞세운 삼성전자 '시장 주도권 직접 잡는다'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가전 전 제품에 스마트 기능을 탑재, 연결성을 확대한다고 선언했다. 모든 가전 기기가 연결되고 음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홈 생태계 사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스마트홈 생태계의 중추는 AI와 IoT다. 구글, 아마존이 AI 서비스와 스피커로 스마트홈 시장 공략 속도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갤럭시 S8에 AI 서비스 '빅스비'를 탑재하며 독자 기술력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빅스비를 탑재한 스마트 냉장고를 발표했다.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가전 영역에까지 독자 AI 서비스를 확대 적용한다는 전략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빅스비가 스마트홈을 구성하는 모든 가전의 통합 제어 길도 열렸다. 내년에 빅스비가 탑재된 AI 스피커를 출시할 예정인 삼성전자는 '애니타임 애니웨어 위드 보이스' 전략도 공개했다. 스마트폰과 AI 스피커를 가리지 않고 사용자가 명령만 내리면 어떤 가전도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 전략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비자가 편하게 가전을 제어하려면 마이크가 어디든 있어야 한다”면서 “거실에서 TV를 볼 때는 TV, 주방에서는 냉장고, 잘 때는 스마트폰이 음성을 받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특정 기기가 스마트홈의 '허브' 역할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삼성전자는 '사용자'라는 답을 내린 것이다.
똑똑한(스마트) 가전의 두뇌 역할을 하는 운용체계(OS)도 삼성전자는 직접 챙기겠다는 입장이다. 스마트 냉장고 '패밀리 허브'와 스마트 TV를 필두로 삼성전자 독자 OS인 '타이젠'을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최근 4.0 버전까지 발표된 타이젠은 사용자환경(UI)을 벗고 임베디드 방식까지 발전했다. 기존의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스마트 TV·냉장고는 화면으로 타이젠 운용 방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임베디드 방식은 기기 안에서 사용자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쉽게 알지 못한다. 화면이 없기 때문이다. 화면이 필요 없는 소형 기기나 IoT 기기를 제어할 때 유리하다. 사용자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기기에도 스마트 기능을 적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스마트 가전에 적용하는 OS는 무조건 타이젠으로 간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연합 전선 구축하는 LG전자 '필요한 것만 챙긴다'
LG전자의 스마트 홈 생태계 구축 전략은 삼성전자와 조금 다르다. LG전자는 활발한 동맹 맺기에 속도를 낸다. 사용자가 원하는 생태계를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대표 사례가 구글 및 아마존과의 협력이다. LG전자는 스마트폰 V30에 구글 어시스턴트 한국어 서비스를 처음 적용했다. 스마트폰 안에 들어간 AI 음성 인식 서비스는 가전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금은 미국에서 냉장고, 세탁기, 로봇청소기, 오븐 등 생활 가전 7종을 구글 어시스턴트로 제어할 수 있지만 앞으로 우리말로도 가전을 제어·관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LG전자는 구글과 함께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된 가전제품을 구매하면 AI 스피커 '구글 홈'을 제공하는 공동 마케팅도 진행하고 있다. LG전자와 구글 합동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 전략의 일환이다.
아마존과의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아마존 AI 서비스인 알렉사와 연동하는 가전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AI 스피커 에코로 다양한 LG전자 가전을 제어할 수 있다. LG전자 독자 OS인 '웹OS'를 적용한 TV에도 알렉사를 연동할 계획이다.
LG전자가 삼성전자 '빅스비'처럼 독자 기술로 개발한 AI 서비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LG전자는 AI 스피커 '스마트 씽큐 허브'와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 '딥씽큐' 등 다양한 기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구글, 아마존과의 협업을 강화해 더 넓은 생태계를 확산하겠다는 게 LG전자의 전략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영역별로 특화된 AI 개발은 지속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빅스비처럼 범용 AI 서비스 개발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장 영역에 따라 독자 기술을 개발하거나 다른 업체와 협력하는 등 '취사선택' 전략을 펼치겠다는 의미다.
LG전자의 전략은 가전 OS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타이젠으로 모든 가전을 통합한다는 입장과 달리 LG전자는 다양한 OS를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있다. 독자 개발하고 있는 웹OS는 주로 스마트 TV·냉장고에 적용했다. 우리나라 등 특화 시장에 맞춰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10을 적용한 스마트 냉장고도 개발했다. 로봇 분야에서는 리눅스 기반의 '우분투'를 핵심 OS로 활용하고 있다.
◇동몽이상(同夢異床)의 삼성과 LG, 아직은 승패 속단 어려워
'모든 가전에 AI를 탑재하고 IoT 기반으로 연결한다'는 꿈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같다. 스마트 가전으로 스마트홈 시장을 주도하려는 미래 비전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세계 IoT 표준 규격을 준수하는 가전 개발이나 타사 제품 간 연동은 두 회사가 함께 갈 노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방법론에서는 서로 다른 전략을 택하면서 갈림길에 섰다. 업계에서는 시장 활성화가 예상되는 2020년께 누구의 전략이 옳고 틀렸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각 전략에 장단점이 있고 시장 자체가 너무 초기여서 쉽게 속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막 AI와 IoT 기능을 적용한 스마트 가전이 시장 규모 자체도 집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아주 극소수만 AI와 IoT 기능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신중함을 보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