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빠르게 변해간다. 최근 정보통신기술(ICT)이 나노, 바이오, 인지과학기술 등과 결합해 만든 거대한 합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인류의 묵시적 합의는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켜 물리적 세상을 변신시킨다. 45억년 지구 역사를 하루로 가정하면 과학 기술은 눈 깜짝 할 사이보다 더 짧은 시간에 끊임없이 물질세계에 변화를 가하며 인류의 문명사 대부분을 이뤄왔다. 앞으론 더 빠르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만들 것이다.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기술과 사회의 접점에서 발생할 10대 이슈를 선정, 심층 분석한 '소시오-테크(Socio-Tech) 10대 전망' 보고서를 발간했다. 시장, 혁신, 산업, 경제, 권력, 정보, 안보, 노동, 소비, 관계 10대 메가트렌드를 압축하고, 핵심 이슈 관련 전략적 기술을 도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장 먼저 부각되는 화두는 인공지능(AI)의 민주화다. 역사적으로 국제질서를 뒤흔든 새로운 네트워크의 부상이다. 육로·초원·해양 네트워크, 인터넷에 이어서 누구나 이용 가능한 AI라는 거대한 지적연결 네트워크의 탄생을 보고 있다. 무엇이든 해결해줄 수 있는 알라딘 '지니' 같은 집사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의 도래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AI 개발도구 대중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협업 혁신이다. 새로운 네트워크 탄생으로 나타나는 초연결 현상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계를 허문다. 또 생태계에 새로운 질서를 요구한다. 한 개인이, 한 나라가 당면한 문제를 홀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서 어떻게 공통된 목표를 세우고 그 공통의 목표를 실현해 나갈 것인가라는 방법론 문제에 직면한다.
세 번째는 기술을 소유한 개인권력 확대다. '블록체인' 같은 인간의 트릭을 허용하지 않는 투명한 시스템의 출현이다. 스스로 정확도를 높여가며 상황파악력을 가지는 AI와, 상황에 따른 빈틈없는 액션을 실행하는 '스마트계약' 체계의 결합은 인간의 속임수나 불법적인 조작을 용납하지 않는다. 관리와 중개가 불필요한 세상으로 달려간다.
네 번째는 탈진실의 위험이다. 정보의 홍수가 가져다주는 역기능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유사한 성향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연계는 강화되고, 다른 시각을 가진 구성원 간 접점은 줄어든다. 사회문제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수시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예상된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낼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의 축적이 어려워질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의 중요성이 증대된다.
다섯 번째는 기술계급 사회의 출현이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전면적인 디지털지능화 현상은 결국 디지털지능 인프라를 능수능란하게 만지면서 최고급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직업군 탄생을 야기한다. 기계와 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에 능한 사람들의 부상이다. 기술이 직무를 보완하는 시대에서 기술을 보완하는 직무가 탄생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여섯 번째는 인간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기계다. 지금까지 기계는 인간에게 한낱 도구에 불과했으나 비로소 인간과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인간에게 새로운 소통 대상으로 인식된다.
137억년 우주역사, 45억년 지구역사, 15만년 호모사피엔스·언어·과학기술의 시간을 거쳤다. 지금은 100세 수명시대를 꿈꾸지만 인간이 살 수 있는 지구의 수명은 1000년 앞으로 다가왔다는 과학적 예측도 공존한다. 어느 순간 인간의 판단 오류로 더 빠른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우리는 '무엇이 돼야 하는가'라는 새롭고 근본적인 화두 앞에 직면하고 있다. 국가적 어젠다 설정이 우리를 벼랑으로 밀어버릴 수도 있고, 무지갯빛 다리로 안내할 수도 있다. 피할 수 없는 세계가 도래한다. 새로운 질서를 차분히 준비해야만 한다.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shlee@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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