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지기로 몰카를 잡겠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정부의 디지털성범죄 대책 발표를 이틀 앞둔 지난 24일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몰래카메라(몰카) 판매점에서 탐지기를 함께 팔고 있었다. 10~20분 발품을 파니 몰카 가게 서너 곳이 금세 발견됐다. 간판에 '몰래카메라 탐지기'라고 큼지막하게 써 놓은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기자가 직접 입수한 USB 형태의 몰카를 내밀며 “이 기기를 잡아낼 수 있는 탐지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종업원은 그런 건 없다며 “요즘 TV에 여자 화장실을 탐지기로 수색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그건 다 쇼”라면서 “용산 어디를 다녀도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겨우 7만원짜리 몰카인데 이걸 못 찾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되묻자 그는 “사진 촬영이나 녹화 기능만 있는 몰카를 찾는 탐지기는 원래부터 무용지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탐지기는 두 가지 기법으로 몰카를 적발한다. 적외선을 쏜 뒤 반사되는 빛으로 몰카 렌즈를 찾아낸다. 몰카에서 발생하는 전파를 수신해서 탐지하기도 한다. 적외선 방식은 렌즈 크기가 작아질수록 효력이 떨어진다. 몰카 렌즈는 바늘구멍만 해서 탐지기와의 거리가 조금만 떨어져도 본래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전파 수신 방법도 신통치 않다. 배터리와 내장 메모리만을 탑재한 채 동작하는 몰카는 전파 자체를 내보내지 않기 때문에 감지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폐쇄회로(CC)TV처럼 카메라가 촬영한 목표물이 전파를 타고 외부로 나가는 몰카에 한해 추적할 수 있다.
다른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몰카 탐지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가게 주인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예 팔기 싫다는 기색을 내보이며 “작동이 안 된다고 환불해 달라는 경우가 많아 골치 아프다”면서 “쓰겠다고 하면 구해 주기는 하겠지만 환불은 불가하다”고 선부터 그었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 가게였다.
어떻게든 팔아 보려고 소비자를 현혹하는 곳도 있다. 한 판매점 주인은 CCTV, 무전기같이 고주파가 흐르는 장비에다 탐지기를 갖다 대며 성능을 자랑했다. 기자가 실제 몰카를 들이밀며 “이것도 탐지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제야 그는 “수백, 수천만원짜리 탐지기를 써도 어렵다”면서 “가정용을 찾는 줄 알았다”고 한발 물러섰다.
현재 용산 일대에 판매되고 있는 탐지기는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온다. 한국산 제품은 없다는 게 상인들의 답변이다. 중국산도 수입이 뚝 끊긴 상태다. 탐지기 성능이 소비자 기대치에 못 미치면서 찾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이다.
몰카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탐지기 관심도도 덩달아 높아졌지만 정작 제대로 된 물건은 없는 셈이었다.
반면에 몰카는 판을 치고 있다. 견제 수단이 없는 사이에 시장을 키우고 있다. 업주들이 주로 이용하는 몰카 유통 사이트를 보면 품목만 50개가 넘는다.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열쇠, 전등, 옷걸이, 물병, 마우스, 스위치, 모자, 안경, 시계, 넥타이 등 웬만한 물건에 몰카가 들어가 있었다. 길이가 3.5m나 되는 내시경 몰카도 판매되고 있다.
대놓고 '저희 집 몰카는 탐지기에 걸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홍보하는 가게도 있었다. 성능도 진화하고 있다. 초고화질(UHD)은 기본이다. 손 떨림 방지, 방수, 저조도 촬영 기능이 탑재된 몰카는 20만~30만원대에 살 수 있다.
중앙전파관리소 관계자는 “단속을 나가긴 하지만 예방 차원 성격이 강하다”면서 “미약한 전파·전류를 탐지기로 잡아내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몰카 이슈가 터질 때마다 고민해도 확실한 적발 기술을 찾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