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를 만들어서 대기업에 납품, 1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렸지만 결국 사업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사업을 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생산 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기기도 했지만 완전 자동화가 되지 않으면 경쟁이 안 되더라고요. 설계가 하나 잘못 되기라도 하면 바로 몇 십억원 손해가 나는 거예요. 실제 회사를 문 닫을 뻔한 경험도 있죠. 자율주행자동차 시장이 열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 센서 시장의 전망이 밝다는 것은 우리도 압니다. 하지만 전망만으로 사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국내 한 센서 중소기업 대표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센서업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 준다. 이 업체는 최근 센서 생산 사업을 정리하고 솔루션 분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센서도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승자독식' 세계가 되고 있다.
이 대표는 “찔끔찔끔 투자해서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1년에 30억~40억원 적자를 내더라도 5년 이상 버틸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업체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가속도 센서 개당 가격이 1~2달러밖에 안 되는데 100만개를 만든다고 해도 매출이 10억원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이 시장을 보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생산 장비를 다 갖추려면 도저히 손익계산이 안 나오는 구조”라며 어려움을 설명했다.
원천 기술 확보도 쉽지 않지만 기술력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면 낙오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년에 1억개를 만드는 회사와 300만개를 만드는 회사의 원가 경쟁력은 게임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센서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까지 갖추고 있는 분야는 상보형금속산화반도체(CMOS)이미지센서(CIS) 정도다. 세계 2위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 계열사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최고 스마트폰 사업을 바탕으로 수요처도 크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고는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가 없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한국센서연구조합 조사에 따르면 현재 기술 구현이 가능한 센서의 종류는 350여가지에 이른다.
센서는 융·복합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재료부터 신호 처리, 시스템온칩(SoC), 컨버터, 패키징, 소프트웨어(SW) 기술력이 모두 필요하다. 어느 한 분야만 잘한다고 해도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특정 분야에 집중된 R&D로는 전반에 걸친 경쟁력 살리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현재 스마트폰에는 평균 20개 이상, 자동차에는 약 200개 이상의 센서가 쓰인다. 앞으로 자율주행차, 스마트홈, 웨어러블, 의료·바이오, 로봇 등으로 활용 분야와 사용량은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수 있다.
최근에는 센서의 핵심 소자인 센서 칩뿐만 아니라 센서 칩을 모듈화한 후 SW를 개발, 부가 가치를 높이는 혁신 아이디어가 주목받는다. 센서 칩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 기업은 솔루션에 집중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 지원은 R&D 분야에만 집중됐지만 앞으로는 각 요소 기술을 이어 줄 수 있는 조정자 역할도 요구된다. 몇 개 분야에서라도 세계 1등을 해보자는 전략으로 연구, 상용화, 인프라, 제조 기반을 갖추고 강점이 있는 기술과 기업을 접목시키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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