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원으로 일하던 A씨는 얼마 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직했다. 프로젝트를 이끌던 연구 책임자가 이직하면서 프로젝트가 반강제로 종료됐다.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A씨와 한 팀에서 일하던 동료 4명이 모두 그렇게 떠났다.
그들은 비정규직 연구원이었다. 정규직이었다면 프로젝트를 종료하지 않고 이어 갔거나 다른 연구 주제를 찾았을 것이다. A씨는 근무 연차로는 수석급에 해당하지만 본인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지도, 하고 싶어한 연구를 하지도 못했다.
A씨 같은 출연연 비정규직은 통계상으로만 3700명이 넘는다. 전체 출연연 근무자의 23%에 이른다. 정부가 자랑하는 공공 연구 성과 뒤에는 이들의 땀이 있다. 필요한 데이터를 얻을 때까지 실험하고, 논문 일부를 작성하고, 특허를 냈다.
문재인 정부는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언했지만 해결은 난망이다. 상시·지속 업무 판단 기준을 놓고 한바탕 논란을 벌이더니 이번엔 '공개경쟁' 갈등이 불거졌다. 기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외부와 경쟁시켜서 새로 뽑자는 주장이다.
최고 인재를 뽑아 연구 성과를 극대화하자는 주장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모순이 더 크다. 그 동안 출연연은 비정규직 문제가 제기될 때 연구 역량에는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연구 역량 때문에 재검증이 필요하다니 군색하다.
인건비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비정규직 임금 수준은 정규직 대비 90%가 넘는다. 4대 보험도 가입했다. 정규직화로 재정난이 밀려올 것처럼 호도해선 안 된다. 잠재 비용 상승 우려는 말 그대로 '잠재'일 뿐이다. 객관성이 부족하다.
출연연만 탓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비정규직이 늘어난 데는 안정된 기관 운영을 방해하는 연구과제중심제(PBS) 같은 구조 문제가 있다. 정부는 말이 앞섰다. 출연연은 인력 구조가 복잡하다. 연구, 기능, 행정직 등 다양한 직무가 있다. 그 안에서도 고용 형태가 다르다.
먼저 직무를 분석한 뒤 정책을 추진해야 했다. 정원(TO), 예산 대책도 마련해야 했다. 대책이 설익었으니 '희망고문 공범' 소리를 듣는다. 현실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