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88> 공감 다루기

리추밍은 기술공 출신이다. 당시 승진해서 작업 감독으로 있었다. 1990년 무렵 하이얼은 기술 병목에 시달리고 있었다. 냉장고 생산 라인은 용접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여덟 개나 되는 도관 어디라도 용접이 허술하면 제 기능을 못했다. 게다가 용접 부위가 타서 제품을 통째로 망치기도 했다. 생산성과 품질 관리는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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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리추밍은 작업대에 놓인 용접용 토치에 눈길이 갔다. 토치는 헤드 길이가 7~8㎝에 불꽃은 15㎝쯤 됐다. 온도는 섭씨 1500도까지 올라갔다. 이런저런 시험 끝에 몇 가지를 바꿨다. 우선 헤드 각도는 120도에서 90도로 조정했다. 토치 길이는 절반으로 줄였다. 분사 구멍도 0.3㎜로 줄였다. 불꽃은 절반 크기로 줄었고, 온도도 1000도로 떨어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용접은 쉬워졌고, 접합부를 태워서 제품을 망치는 일도 잦아들었다.

'혁신하는 문화'는 모든 경영진이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쉽지가 않다. 대부분 구호에 그친다. 정작 자신의 기업에서 혁신이 문화라고 믿는 직원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소렌 캐플런 서던캘리포니아대 마셜경영대학원 교수는 직원에게 혁신하라고 하는 대신 기업이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고 말한다. 길을 보여 주라고 한다. 상식과 달리 '혁신 역학'은 단순하다. 대개 직원은 경영진이 의식하거나 무의식 중에 선택과 행동을 관찰한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행동 가설을 세운다. 관찰을 통해 가설이 검증되면 그에 따라 행동한다. 다른 증거가 없다면 이것은 유지된다. 만일 혁신을 원한다면 가설을 바꿔 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변화는 없고, 혁신 프로젝트는 실패한다.

캐플런 교수는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공감할 경험을 만들어라. 지프카는 카셰어링을 처음 시작한 기업이다. 우버나 에어비엔비 선배 격이다. 소비자는 책상 앞 컴퓨터 대신 휴대폰을 사용한다. 직원 생각부터 바꿔야 했다. 경영진 회의에 직원을 초대한다. 거기에는 경영진이 사용하던 2대 데스크톱 컴퓨터와 망치가 놓여 있다. 참석한 직원 가운데 누구든 부숴도 좋다고 말한다. 지프카는 경영진 회의 속에서 혁신 의지를 경험하게 했다.

둘째 고객 시각 찾기다. 새로 목표로 해야 할 고객을 초대, '라운드테이블'을 열었다. 이른바 '모바일 신세대(Mobile first Millennial)'였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가 어떤 건지 들으면서 혁신이 고객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어떤 새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셋째 돈으로 따지지 않은 보상을 하라. 하이얼은 새로 개발된 소형 토치에 리추밍의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제안자를 따서 이름을 붙여 나갔다. 샤오링 렌치, 윈옌 거울, 쉬안추앙 후크 등이 줄을 이었다. 1998년 즈음 한 해 3만7000개의 혁신 제안이 나왔고, 그 가운데 1만9000개가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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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가치사슬을 따라 혁신을 유도하라. 혁신 종류를 따질 필요가 없다. 혁신이 있으면 가치사슬을 따라 번지도록 하라. 재무 보상은 오히려 전염성이 약했다. 다섯 번째 혁신 전도사를 양성하라. 대부분 기업이 많은 인력 자원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혁신 리더십에 초점을 둔 기업은 많지 않다. NBC유니버셜 '탤런트 랩'이 가장 강조한 것은 새로운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을 심는 것이었다.

1991년 장루이민 하이얼 최고경영자(CEO)는 새로 만든 토치에 리추밍의 이름을 붙였다. 장루이민은 추밍 토치로 자신의 혁신 의지를 보여 준다. 이것은 직원에게 분명한 시그널이었다. 이제 추밍 방식은 하이얼이 지향하는 분명한 가정이 됐다. 하이얼은 자신을 중국이 낳은 진정하고 유일한 혁신 기업이라 자부한다.

캐플런 교수도 혁신 문화란 몇 년 걸리는, 큰 돈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니라 한다. 직원이 생각하는 가정을 바꾸라. 경영진의 의지를 경험하게 하라. 암묵의 규칙을 다시 쓰라. 그럼 혁신 문화는 자연스레 돌아온다. 그래서 가끔 혁신은 성공한 리더에게 쉬운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난제가 된다. 결국 혁신 기업 행동 양식이 다른 셈이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