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하반기부터 우리 생활에 밀접한 단위 기준인 질량, 전류, 온도, 물질량을 측정하는 표준이 바뀐다. 지금까지는 '원기'와 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나 각 단위에 부합하는 일정 수준의 값을 정해 단위 기준을 삼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면 물질량이 변하기 때문에 '오차'가 발생한다. 실제 존재하는 물체는 아무리 단단한 물체라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를 겪는다. 일상생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미세 분야를 다루는 과학 기술이나 산업 분야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 아주 미세한 측정 차이로 중요한 과학 기술의 성과를 놓칠 수도 있고 미세 장비가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새로운 표준은 단위 기준을 영원불변한 '기본 상수'로 정의한다. 앞으로 바뀔 질량, 전류, 온도, 물질량 정의도 이를 초점으로 이뤄진다.
국제도량형위원회(CIPM) 산하 단위자문위원회(CCU)는 지난달 6일 프랑스 파리 국제도량국에서 열린 제23차 회의에서 질량, 전류, 온도, 물질량의 국제단위계 개정을 결정했다. 세계가 합의한 국제단위계 7종 가운데 4종을 한꺼번에 개정하기로 했다.
이번에 결정된 내용은 내년 하반기 국제도량형총회에서 확정하고, 2019년 5월 20일 '세계 측정의 날'을 맞아 발효된다.
재정의의 골자는 4개 기본 단위를 각각 관련된 기본 상수와 연결하는 것이다. 대표 사례가 질량과 에너지·파동을 설명하는 '플랑크 상수'의 연결이다.
질량은 그동안 내구성이 높은 백금과 이리듐의 합금으로 만든 원기로 규정됐다. 사람들이 합의한 약속이다. 1889년 만들어진 원기의 질량을 1㎏으로 보자고 지정, 지금까지 활용했다. 그러나 100여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오차가 발생했다. 세 겹의 유리관으로 보호받고 있지만 조금씩 진행된 손상과 오염으로 질량이 변했다. 복제한 원기와 교차 측정 결과 처음 원기가 만들어졌을 때보다 최대 100마이크로그램(㎍)의 오차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에 100㎍은 아주 작은 오차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차가 커질 수 있고, 미세 분야 연구와 산업 발전이 가속화돼 재정의가 불가피하다.
플랑크 상수(h)는 에너지와 관련된 주요 상수다. 에너지와 질량은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플랑크 상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질량 역시 확인할 수 있다.
전류는 기본전하량, 온도는 볼츠만 상수, 물질량은 아보가드로 상수로 새롭게 재정의된다.
다행히 기본 단위의 재정의가 우리 일상생활에 혼란을 불러올 일은 없다. 길이 역시 같은 문제를 겪었고, 1983년에 재정의됐지만 혼란은 없었다. 새로운 정의 기준을 그동안 쓰인 값에 맞추기 때문이다. 길이의 경우 빛이 진공 상태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이동한 길이를 1m로 규정했다. 역시 그동안 쓰인 1m 값에 최대한 맞췄다.
국내 교정 기관인 HPM의 유상준 대표는 “기존 정의와 새로운 정의 값이 거의 일치한다”면서 “일상생활 수준에서는 어떠한 혼란도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세 연구 분야에서는 엄청난 이점이 작용한다. 전에 없던 정확한 측정 기반을 마련해 그동안 있은 미세한 오차를 원천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아주 적은 양의 약물을 주입하는 미세 바이오 분야, 미세한 전류를 이용하는 초미세 전자 소자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나노스케일 연구 및 산업에 정확도를 더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표준과학연구원이 이런 단위의 재정의를 뒷받침한다. 표준연은 현재 플랑크 상수를 측정할 수 있는 '키블 저울' 장비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 밖에 새롭게 정의되는 단위 측정 체계 및 보급 시스템 연구개발(R&D), 변화 내용을 알리고 혹시 모를 우려를 불식시키는 홍보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박연규 표준연 물리표준본부장은 “질량, 전류, 온도, 물질량 등 국제단위계의 재정의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미세·초미세 연구의 역량을 높이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면서 “일상 상거래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과학계와 산업계에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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