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개월 간 숨 가쁘게 이어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건설 재개로 마무리됐다. 건설 재개 찬성 59.5%와 반대 40.5%로 예상보다 높은 차이를 보였다. 숙의과정을 거친 시민참여단 471명은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쪽에 더 많은 손을 들었다.
이제 논란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공론화위원회가 당초 계획에 없던 원전 축소까지 권고하면서 또 다른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이 22일 다시 '탈원전'을 언급하면서 논란을 확대시켰다. 그럼에도 미래 주요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원전을 에너지 믹스에서 제외하는 성급한 조치 대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원전으로 지속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탈원전' 악재 여전…신규 6기 건설 불확실
공론화 결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의견이 나오자 원전 산업계는 한 숨 돌린 상황이다. 당초 문재인 정부가 예상한 '원전 제로' 시점도 2079년에서 2082년(신고리 준공예상 시점부터 60년)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또 다른 신규 원전 건설사업 추진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단 정부는 공론화 결과와 관계없이 원전 축소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노후원전은 폐기하고 신규 원전을 짓지 않는 방식으로 원전 비중을 줄인다는 것이다. 신고리 5·6호기는 예정대로 건설하지만 앞서 예고됐던 신한울 3·4호기와 천지·대진원전 등 신규원전 6기는 올해 발표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높다.
원자력계는 현 정부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른 실질적인 탈원전 분기점은 5년 뒤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2022년까지는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영향이 없다고 예상하는 것과 같이, 앞으로 5년 안에는 실질적인 원전 비중 축소가 없다. 하나 변수가 있다면 2022년 계속운전 만료시기인 월성원전 1호기의 조기 영구정지 결정이 나는 정도다.
원자력계가 5년 뒤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 시점부터 본격적인 노후원전 수명완료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월성 1호기(2022년)부터 고리 2호기(2023년), 고리 3호기(2024년), 고리 4호기·한빛 1호기(2025년) 등 원전 퇴역이 이어진다.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신고리 5·6호기 최종 준공 완료 시점은 2022년이다. 문재인 정부 계획대로라면 이 이후에 국내 원전 건설시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원전 연구개발(R&D), 산업 생태계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선언은 현 정부가 하지만 이에 따른 실질적인 결정과 행동은 차기 정부의 몫이다. 2022~2023년에 실제로 탈원전 기조가 유지될지 여부는 점치기 힘들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수정 가능성은 제쳐두고라도 세계 에너지 시장 구조가 어떻게 변화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내 전력수급 상황과 국제 에너지시장 추이에 달렸다. 노후 석탄화력이 많이 폐기된 가운데 신재생에너지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 원전 필요성이 현 정권 내에서도 다시 부상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제유가까지 오른다면 우리나라 입장에선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탈원전을 유지하기 힘들다.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 재개 측이 주장한 것처럼 원전이 주요 에너지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논란 확대
공론화라는 방식이 새로운 실험으로 주목받았지만 공론화 과정 중 정부와 공론화위의 기계적 중립성, 최종 발표에서 당초 계획에 없던 원전 축소 정책 선호도 조사 발표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향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그동안 공론화와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고 강조했다. 공론화 결과 역시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다룰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지난 20일 최종 조사 결과 발표에서 “정부의 당초 의도와 달리, 원전 축소 및 확대·유지가 주장되는 등 관련 논란을 피할 수 없어 참여단 설문 문항에 '원자력 발전 정책방향으로 축소·유지·확대 중 어느 것에 동의하는 지'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결과는 원전 축소가 53.2%, 유지와 확대가 총 45.2%로 나왔다. 공론화위는 이를 근거로 신고리 5·6호기는 건설을 재개하되, 원전 비중을 축소하는 에너지 정책을 권고했다. 정부의 당초 계획과 달리 논란의 장을 탈원전 정책으로 넓혔다.
원전 찬반 단체들은 발표 직후 원전 축소 정책 권고와 관련 다른 해석을 내놨다. 반핵 단체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지만, 노후원전 조기 폐로 등 탈원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원전 단체는 공론화위가 당초 계획에 없던 조사를 실시해 정부에 탈원전 명분을 만들어줬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정부, 청와대는 20일 공론화 결과 발표 후 이어진 당·정·청 협의회에서 공론화위의 원전 축소 권고를 에너지 전환 정책 명분으로 삼으려했다.
공론화 기간 공정성에도 불만이 남았다. 원자력계는 공론화 기간 동안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 의지를 밝히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에너지 전환 정책 홍보 동영상이 올라간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평했다. 탈원전 정책 홍보가 계속된 상황에서 관련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평가다.
그동안 정부는 신고리 공론화와 탈원전은 별개라는 논리로 탈원전을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을 홍보했다. 정부가 공론화의 원전 축소 권고를 탈원전 정책 명분으로 활용하면 말을 뒤집는 모양이 된다.
원자력계 관계자는 “정부 중심으로 탈원전 홍보가 진행된 상황에서 원전 축소 정책 선호도를 조사한 것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며 “원전 정책 관련 조사를 하려면 별도 공론화를 진행하거나, 아예 차기 정부에서 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