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 주재 북한 외교관이 자신의 집에 수천만원 상당의 고급 주류 400여상자와 다이아몬드 등 보석류를 보관하다 현지 경찰관에게 한꺼번에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외교관이 면책특권을 이용해 불법 주류판매로 외화벌이에 나섰고, 이를 간파한 현지 경찰관이 북한대사관 측에서 문제 삼지 못할 것으로 보고 훔쳐갔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파키스탄 외교가와 일간 파키스탄투데이에 따르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주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는 현기영 1등서기관이 지난 3일 집 안에 있던 현금, 귀금속, 주류 등이 사라졌다며 현지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다.
현장 CCTV에는 2일 정오께 경찰관 제복을 입은 이들이 현 서기관의 집에서 물품을 꺼내 가는 장면이 기록됐다.
조사 결과 이들은 실제 파키스탄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말리크 아시프 경사 등 3명으로, 현 서기관의 집에 들어가 3000달러(약 340만원)와 다이아몬드 2개, 랩톱 컴퓨터, TV와 대량의 수입 주류를 훔쳐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주류는 와인 201상자, 맥주 60상자, 위스키 100상자, 테킬라 9상자 등 450상자에 달한다.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서는 공식적으로 주류판매가 금지돼 있다. 보통 35달러 정도인 조니워커 블랙 양주 1병이 암시장에서 70달러로, 면세가 20달러 정도인 하이네켄 맥주 1박스가 150달러 이상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도난품의 실질 가액은 수천만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아시프 경사 등 3명을 절도 혐의로 입건하고 직무를 정지시켰다. 또 현재까지 술 2000병을 회수했다.
아직 현 서기관이 많은 술을 집에 보관하게 된 경위는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 외교관들은 이전에도 파키스탄에서 대사관 행사용 등 외교관 수입 쿼터를 이용해 술을 반입한 뒤, 불법으로 현지인들에게 판매하다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2013년 4월, 2015년 5월에는 북한 외교관이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에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으로부터 양주와 맥주를 몰래 들여와 판매하다 적발됐다. 지난해에는 북한대사관이 UAE 샤르자로부터 반입한 컨테이너에 대사관 구매 한도의 2배 가까이 되는 주류가 실려 있어 통관이 보류되기도 했다.
이번 절도 사건이 북한 대사관의 주류 밀수 수사로까지 확대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도난당한 주류의 양이 현 서기관에게 연간 수입 허용된 양보다 많지만, 대사관 다른 직원들이 구매한 주류를 함께 보관했거나, 몇 년 치 수입 물량을 계속 보관했다는 등으로 해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관 면책특권 때문에 진위를 수사하기 어렵다.
파키스탄 경찰도 소속 경찰관들이 연루돼 있어 수사에 소극적인 모양새다.
현지 경찰은 연루된 경찰관 3명 모두를 최근까지 체포하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사전 보석허가를 받았다. 장물을 사들인 주류 밀매조직 '말리크 브라더스' 조직원도 보석 상태로 구속을 면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