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지난해 수입차 신뢰도에 큰 타격을 준 디젤게이트의 영향을 단시간 내 극복하며 활력을 되찾고 있다. 아우디폭스바겐의 빈자리를 토요타와 포드 등 일본·미국의 다른 브랜드들이 빠르게 메우며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연말부터 아우디폭스바겐이 다시 판매를 재개, 수입차 시장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입차, 디젤게이트 이후 성장세 회복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9월 신규 등록 수입차는 17만3561대로 전년 동기 대비 5.1% 증가했다. 아우디폭스바겐의 판매 부재에도 성장세를 이어 갔다. 수입차 시장의 판매 호조는 벤츠와 BMW가 주도했다. 두 브랜드는 60%에 육박하는 시장 점유율로 독일 브랜드의 위상을 과시했다.
올해 수입차 시장 1~2위는 벤츠와 BMW로 굳혀졌다. 벤츠는 올해 들어 9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40.1% 증가한 5만4067대를 판매, 지난해에 이어 1위 자리를 확정했다. 같은 기간 BMW는 30.5% 늘어난 4만1590대를 판매했다. 현재 판매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벤츠와 BMW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우디폭스바겐의 빈자리를 채울 3위 다툼도 치열하다. 지난해 수입차 시장 3위는 아우디(1만5544대), 4위는 폭스바겐(1만3148대)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이들 두 브랜드가 영업을 중단하면서 판매량이 919대에 그쳤다. 빈자리는 일본, 미국 등 브랜드가 메꿨다. 올해 1~9월 누적 판매 기준 3위는 렉서스(9275대)다. 그 뒤를 포드(8289대)와 토요타(8205대)가 바짝 추격하고 있다. 혼다(7949대)와 랜드로버(7295대)의 높은 성장세도 주목된다.
렉서스는 디젤게이트 이후 하이브리드차를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올해 9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35% 증가했다. 하이브리드 대표 모델 ES300h는 올해 5월과 7월 수입차 시장 베스트셀링카에 오르기도 했다.
포드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익스플로러가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다. 익스플로러는 올해 포드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SUV 인기를 입증했다. 토요타도 하이브리드차 중심으로 올해 9월까지 누적 판매가 25% 이상 증가했다. 지난달 출시된 뉴 캠리는 벌써 1500대 이상을 계약하며 연말까지 성장세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디젤게이트 이후 배출가스를 줄이고 연비를 높인 친환경차 비중이 꾸준히 늘고, 젊은 소비자층 중심으로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욜로(YOLO)' 소비 성향이 확산되면서 수입차 판매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20~30대 소비자들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자동차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면서 “소비 트렌트 변화에 따라 수입차 판매량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연말 '아우디폭스바겐' 시장 재진입 초읽기
아우디폭스바겐의 시장 재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올해 말부터 내수 시장을 둘러싼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우디폭스바겐 10개 차종 21개 모델은 최근 환경부의 배출가스 인증을 최종 통과하며 판매까지 연비와 제원 등록 등 대체로 간단한 절차만 남았다. 아우디폭스바겐은 이르면 다음 달부터 아우디 A6과 Q7, 폭스바겐 신형 티구안, 파사트 GT 등 4개 차종 판매를 시작한다.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차종부터 순차 판매를 재개한다.
영업사원 이탈 등으로 위축된 판매망은 온라인으로 극복해 나갈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카카오와 함께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견적을 받은 뒤 오프라인에서 최종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이달부터 공식 딜러사, SK엔카와 손잡고 인증 중고차 사업도 시작했다. 소비자 신뢰 회복과 중고차 가격 안정화를 위해서다.
이른바 '평택항 에디션'이라 불리는 평택항 재고 차량은 판매 재개까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우디폭스바겐은 해외 반송 후 남은 물량 3000여대의 일부를 국내에 할인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아우디 재고차 40% 할인 루머가 확산되고 있지만 업계는 개인 판매보다 법인 판매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아우디폭스바겐 판매 재개가 대내외 악재로 고전하고 있는 완성차 업계에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아우디폭스바겐의 판매 중단 이전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30%대에 달했다. 디젤게이트 이후 수입차 시장이 안정화에 접어들면서 완성차 업계 입장에선 아우디폭스바겐 판매 재개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안정화돼 있던 수입차 시장에 아우디폭스바겐이 재진입하면서 시장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수 시장 규모가 한정된 상황에서 완성차 판매에도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