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네버 렛 미 고'이다. 일본계 영국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05년 펴낸 소설로,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본에서는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됐다. 참고로 일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상 수상이 좌절되자, 다섯 살에 이민 간 이시구로를 일본과 무관한 사람으로 외면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고 한다. 우리로선 이런 논란마저도 부럽다.
이 소설은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을 다뤘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1990년대 후반 영국의 한 시골에 위치한 '헤일셤'이라는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를 이곳에서 보내게 되는데, 물론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 자라면서 점점 자신들이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이며, 심지어는 매일 마주치는 선생님과도 다른 존재임을 어렴풋이 알아간다.
흔한 소설이나 영화였다면 이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점이 반전으로 제시됐을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이상한 헤일셤의 사례를 죽 늘어놓은 뒤 '이들은 사실 복제인간이다'고 관객을 놀래키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보내지 마는 그런 편한 길을 따르지 않는다. 아예 책 뒤편에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되어 온 존재'라는 문구를 크게 박아놓았다. 그런 것쯤 알아도 소설을 감상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자신하기라도 하듯이.
대신 소설은 헤일셤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추적한다. 어지간히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오래 통찰하지 않으면 깨닫기 힘든 방식으로 이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는 아이들이 '마담'으로 부르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한 달에 한 번 헤일셤에 들러 아이들의 창작품을 가져간다. 왜 가져가는지도 모른 채 아이들은 자신의 창작품이 선택됐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들은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방식으로 마담을 놀래키기로 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차에서 내려 건물로 다가가던 마담은 갑자기 나타나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고 멈춰선다. 다음 장면은 이렇다.
'그녀는 그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우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헉 하고 숨을 멈추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내적 반응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몸서리쳐지는 것을 애써 억누른 채 혹시 우리 중 하나가 우발적으로 자기 몸에 닿을까 봐 겁에 질려 있었다.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을 알아챘다.'
영화 겟아웃에서 흑백 인종차별을 다루던 방식과 유사하게 나를 보내지 마는 이처럼 복제인간에 대한 '정상인'의 시선이 드러나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런 장면이 수십 번 제시되는데,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에서처럼 서서히 독자의 가슴을 죄어오는 서술이 탁월하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