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완전자급제에 대해 '신중론'을 견지한 정부가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라며 통신비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여야가 완전자급제를 밀어붙이는 분위기라 정부와 국회간 이견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종합감사에서 완전자급제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논란이 됐다.
김성수 의원(더민주)은 “과기정통부가 의원실을 방문해 설명한 내부 문건을 보면 완전자급제를 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이 내용이 얼마 후 그대로 보도된 것을 보면 여론조작을 시도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질타했다.
김 의원이 공개한 내부문건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완전자급제에 대해 △단말기 가격 인하를 보장할 수 없음 △세계 시장을 양분한 삼성전자와 애플이 국내 시장에서만 단말 가격을 인하할 이유가 없음 △중저가 단말기 인기 가능성 없음 등 사실상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의원은 “문건은 토론회에 참석한 교수 2명의 의견을 그대로 짜깁기한 것”이라면서 “이대로 된다는 근거가 어디있느냐”며 과기정통부의 무성의한 대응을 비판했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내부문건일 뿐 공식 입장이 아니다”면서 “제조사와 통신사, 유통점,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이 다양하므로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정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게 공식입장”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의혹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과기정통부는 종합감사가 끝나는 대로 통신사, 소비자 단체, 학계 등 각계 전문가가 모인 사회적 논의기구를 출범하고 완전자급제 등 통신 관련 핵심 이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박홍근 의원(더민주)은 “자급 단말기 유통 비중이 8%에 불과해 지금까지의 자급제 정책은 실패했다”면서 “단말 제조사와 이통사 유착구조를 해체해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의원이 이날 공개한 '이동통신 단말기 완전자급제, 소비자 관점으로 다시 보기' 정책연구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자급제폰 비율 8%로, 세계 평균 61%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러시아(84%)는 물론이고 중국(72%), 미국(39%), 브라질(38%), 영국(26%)보다 훨씬 낮다.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완전자급제 찬성 55.9%로 반대(10.4%)를 압도했다. 찬성 이유로는 복잡한 통신요금 구조에 대한 불만이 47.2%로 1위를 차지했다. 단말기 구매 시 불만사항으로는 지원금액 등 정확한 정보 부족(42.6%)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박 의원은 “완전자급제와 함께 알뜰폰 활성화, 제4 이동통신 도입 등의 정책을 병행하면 통신비 인하 효과가 클 것”이라고 확신했다.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는 요금제마저 정부 인가를 받아야 하는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청소년 요금제나 노인층을 위한 실버요금제, 장애인요금제, 결합상품 등이 모두 인가제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은권 의원은 “1위 사업자는 정부로부터 모든 요금을 인가받아야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통신3사의 요금인하 경쟁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정부가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가격을 사전 규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시장의 손발을 묶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과방위에서는 소비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할부수수료와 집단상가, 방문판매 등 유통현장 불완전판매 문제도 개선 대상으로 지목됐다.
고용진 민주당 의원은 새로운 유통채널로 떠오른 '방문판매'에 대한 정부차원의 점검을 요구했다. 고 의원은 2015년부터 올해 8월말까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3사가 방문판매 대리점을 통한 가입자 유치 건수가 총 50만9518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단계 판매를 이용해 서비스에 가입한 50만4425건보다 5000여건 많은 수치다.
고 의원은 방문판매를 통해 소비자가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대리점이 '최신폰 공짜 교체' 또는 '고가단말기 기기값 지원' 등을 내세워 소비자와 계약을 체결한 뒤 반품 거부 또는 과다한 위약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집단 상가 대책 마련을 재차 요청했다. 김 의원은 “서울 대형 집단상가에서 불법 보조금 지급을 통한 번호 이동이 횡행하고 있다”면서 “8%밖에 없는 집단상가가 서울시 전체 번호이동 33%를 차지하면서 중소 판매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과기정통부 국감은 자유한국당이 뒤늦게 합류한 데다 '방송 장악' 등의 쟁점을 두고 의사발언이 잇따르며 사실상 오전 질의시간을 날리고 오후 늦게 재개됐다.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 황창규 KT 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참석해 완전자급제 등에 대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전 의장도 참석해 인터넷 기업 역차별, 뉴스 배치 개입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 발언할 계획이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