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기차 배터리 내수부터 키우자

한국은 배터리 강국이다. 세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각각 2위와 5위를 차지하고 있는 LG화학, 삼성SDI가 있다. 한국은 세계 자동차 생산 6위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기차 시장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상반기 전체 자동차 판매 대수에서 전기차가 차지한 한국의 비중은 0.5%로 20위에 그쳤다. 1위 노르웨이(27.1%)를 비롯해 중국(1.5%), 미국(1.0%), 일본(1.0%)에 뒤졌다.

여러 국가가 2025~2040년을 목표로 내연기관차를 퇴출하기로 했다. 파격의 인센티브 정책도 시행한다. 우리 정부는 내연기관차 퇴출이나 전기차 의무 판매제 도입 등 정책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테슬라가 한 번 충전으로 300㎞ 이상을 달리면서도 가격을 3만달러대로 낮춘 2세대 전기차를 출시했지만 국내 제조사의 의지는 떨어진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 5위 기업에 올랐지만 전기차 판매 순위는 11위에 불과하다.

요즘 배터리 업계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배터리를 만드는 제조 대기업이 깜짝 실적을 냈고, 소재·부품·장비 등 전방업계도 올해 최대 실적을 예고했다. 주가는 연일 고점을 찍고 있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엄습해 온다. 시장 상황이 급변하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은 전기차 구매 때 적용하는 연방 정부의 7500달러 보조금 지원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글로벌 전기차 회사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국내 이차전지 제조사에는 타격이 있을 수 있다. 유럽에서도 석유화학 기업과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기업을 공동 설립하려고 움직인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도 나섰다. 현지 1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업체 창청자동차가 배터리 독자 개발에 뛰어든 것이 대표 사례다.

한국 배터리 산업이 계속 크려면 탄탄한 내수 시장이 필요하다. 정부의 전기차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 이차전지 산업 발전 방안에도 수요자인 자동차 기업의 참여가 없다면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는 전기차, 산업통상자원부는 배터리만 따로따로 얘기한다면 한계가 있다. 최근 다이슨 같은 비(非)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드는 등 해외 기업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기차와 이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동시에 키우는 묘안이 시급하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