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교육의 목표는 코딩이 아니라 컴퓨팅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라는 어느 전문가의 말은 요즘 교육 현장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지금까지 SW 교육이라면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코딩을 의미했는데 최근에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컴퓨팅 사고력을 길러 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한 것 같다.
컴퓨팅 사고력이라는 용어는 1980년 시모어 패퍼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에 의해 처음 등장한다. 패퍼트 교수는 원래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지만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스위스 제네바대 피아제연구소에서 교육학을 연구했다. 그러다가 1960년 한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AI) 대가 마빈 민스키 교수를 만나면서 컴퓨터 교육 가능성을 발견한다. 패퍼트 교수는 “컴퓨터가 인간의 생각하고 학습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다”고 봤다. 1967년에는 최초의 어린이용 코딩 언어 로고(Logo)를 만들었다. 1980년에는 '컴퓨팅 사고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컴퓨팅 사고력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6년 지넷 윙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가 국제컴퓨터학회 ACM 학술지에 세 쪽짜리 기고문을 발표하면서다. 윙 교수는 컴퓨팅 사고력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사고 방법이라고 봤다. 그의 기고문은 3000회가 넘게 인용되는 등 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실 윙 교수는 당시 컴퓨팅 사고력을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않았다. 컴퓨팅 사고력을 '컴퓨터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방법(thinking like a computer scientist)'으로 언급하고 주요 특징만을 설명했다. 윙 교수는 2014년에 “컴퓨팅 사고력은 문제를 수립하고 해법을 만들어 컴퓨터 또는 인간이 효과 높게 수행하도록 표현하는 사고 과정”이라고 재정의한다.
윙 교수의 컴퓨팅 사고력은 SW 교육 보편화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이전부터 SW 교육을 초·중등 정규 과정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 제기돼 왔다. 응용 학문에 가까운 SW를 수학이나 과학처럼 모든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나마 이스라엘에서만 1994년에 SW 과목을 정규 과정에 포함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컴퓨팅 사고력으로 인해 인식이 많이 바뀌게 됐다. 이후 미국, 인도, 영국, 에스토니아, 핀란드, 일본,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SW를 정규 과정에 도입하게 된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차세대 과학 표준 NGSS를 중심으로 과학·수학 교육에도 컴퓨팅 사고력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컴퓨팅 사고력이 조명을 받으면서 코딩의 중요성을 가볍게 보는 경향도 생겼다. 일각에서는 코딩을 컴퓨팅 사고력을 가르치기 위한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SW 교육 방법과 취지를 왜곡할 위험이 크다.
패퍼트 교수는 코딩이라는 행위를 '인간과 컴퓨터의 대화'로 봤다. 코딩에 있는 '언어' 기능을 말한 것이다. 인간의 중요한 특징인 '언어'는 단지 의사 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내용과 구조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코딩은 컴퓨팅 사고력을 촉발시키고 형성시키는데 필수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서 코딩은 SW 교육에서 핵심 중 핵심 교육 수단으로, 코딩을 빼고 컴퓨팅 사고력을 가르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격이다. 패퍼트 교수가 1967년에 로고라는 어린이용 코딩 언어를 만든 것이나 근래에 스크래치와 같은 교육용 코딩 언어가 널리 활용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코딩은 그 자체로 교육 수단이 아닌 목표로서의 취지도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에서는 2020년까지 기존의 일자리 510만개가 사라지고 2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제컴퓨터학회는 2020년까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일자리 절반 이상이 컴퓨팅과 관련될 것으로 본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숫자가 정확하게 맞을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래 사회에서는 어떤 직업이 되든 간에 코딩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컴퓨팅 사고력과 코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컴퓨팅 사고력만 강조하면 SW 교육은 무늬만 바꾼 사고력·창의력 교육으로 변질될 수 있다. 반대로 코딩의 기능 측면만 강조하면 주입식·암기식 교육으로 전락할 수 있다.
내년부터 시행될 우리나라 SW 의무 교육에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무엇보다 교사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교육 당국은 2018년도까지 전체 초등학교 교사 약 30%를 대상으로 3~4일 일정의 직무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교사 숫자도 시급하지만 특히 며칠 동안의 직무 교육은 안이한 생각이다. 혹시 동전의 한 면만 보는 것은 아닌지, SW 교육의 무게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유민수 한양대 교수 msryu@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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