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기타 공공기관'이 아닌 별도의 '연구목적기관'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법이 경제성과 효율성만 강조해 출연연의 자율성,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여야 의원과 관할 부처, 연구계가 한 목소리를 낸다. 관련 법 개정은 기획재정부 반대에 부닥쳐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세정·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9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출연연의 안정적 연구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전·현직 기관장과 연구자, 과학기술 단체, 연구전문노동조합이 300석 규모 강당을 가득 메웠다. 일부는 '기타 공공기관 분류 제외'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신용현 의원은 발제자로 나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법)'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공공기관법은 경영 효율성 제고와 대국민 서비스 향상이 주목적이다. 공공기관을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나눈다. 출연연을 기타공공기관에 포함시켰다.
문제는 공공기관법 취지와 기타공공기관 분류가 출연연 특성과는 맞지 않다는 점이다. 기타공공기관에는 출연연 외에 강원랜드, 예술의전당, 대학병원 같은 대국민 서비스 기관이 포함된다. 이들 기관에 동일 수준의 규정·규제를 적용한다.
출연연은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임에도 일반 공공기관처럼 경영·통합공시, 경영 효율성 제고, 임금피크제 등 의무를 진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매년 평가를 통한 성과연봉제도 장기 연구가 많은 출연연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금피크제에 따라 고령자 연봉을 삭감했지만 정년 연장은 없었다.
신 의원은 “공공기관법에서 말하는 혁신은 경영혁신으로, 우리가 말하는 과학기술 혁신과는 다른데 여전히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 도구로만 보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출연연은 연구 인재를 핵심으로 삼는 만큼 경제성, 효율성이 아닌 사람 중심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민 의원은 “출연연의 공공 연구개발(R&D)은 민간이 할 수 없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영역”이라면서 “여기에 공공기관법이 분명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고 출연연 역할에 역행하는 장벽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거들었다.
권성훈 국회 입법조사관은 법 제정 경과와 사례를 들어 개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2007년 공공기관법 제정 전까지 출연연은 별도 체계로 관리됐다. 지금도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출연연법)'이 출연연 관리·감독 규정을 따로 명시한다. 한국방송공사(KBS), 한국교육방송공사(EBS) 독립성을 위해 공공기관법 대상에서 제외한 사례도 소개했다.
권 조사관은 “공공기관법의 포괄적, 체계적 운영은 일괄 관리 차원에서는 쉽고 효율적이지만 출연연 특성을 살리기는 어렵다”면서 “출연연은 출연기관법, 과기 분야 출연연법에 의해 관리감독되는 만큼 특성에 맞는 체계를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은 19대·20대 국회에서 꾸준히 반복됐다. 유성엽 의원이 공공기관 구분에서 출연연 별도 신설을, 민병주 의원은 출연연을 공공기관에서 제외하자고 각각 제안했다. 이상민, 오세정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신용현 의원이 발의한 공공기관법 개정안이 가장 많은 진전을 이뤘다. 공공기관 구분에 '연구목적기관'을 신설하는 게 골자다. 현 여당도 대선 공약에 채택했다. 기재부는 법률은 그대로 두고 시행령을 고쳐 기타공공기관을 세분화하는 대안을 내놨다. 신 의원은 기재부 안대로라면 정부가 입맛대로 지정 여부를 좌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