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3>꼭 물어봐야 아나?](https://img.etnews.com/photonews/1711/1011910_20171110131838_007_0001.jpg)
회식자리다. 김 차장은 술기운이 오르자 마누라 흉을 보기 시작했다. “요즘 마누라가 자꾸 자기도 밖에 나가 일하고 싶다는 겁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는 사람은 친구 중에도 자신뿐이라나.” 옆에서 듣던 박 부장이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그냥 집에나 있으라 했죠. 괜히 일 배운답시고 돈 쓰지 말라고요.”
김 차장은 소주를 연거푸 마시더니 목청을 높였다. “아니, 일하고 싶으면 나가서 일하면 되지 왜 그걸 나한테 묻는 건데!”
김 차장이 속마음을 털어놨다. 아내가 돈 벌고 싶다는 의사를 남편에게 물으면 무엇이라 답할 수 있겠는가. '돈 좀 벌어봐' 하면 가장으로서 체면이 서질 않고, 반대하면 평생 가정경제를 혼자 책임져야 하기에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고. 김차장 속내는 간단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맞벌이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나. 묻지 말고 알아서 너도 나가서 돈 벌어라'였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3>꼭 물어봐야 아나?](https://img.etnews.com/photonews/1711/1011910_20171110131838_007_0002.jpg)
에피소드를 듣다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J선배와 K선배였다. J선배 남편은 대기업 임원이었다. 그녀의 취미는 골프와 피부 관리였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골프를 치고 다녀도 언제나 하얗고 촉촉한 피부를 유지했다. 심혈을 기울여 관리한 덕분이다.
반면 K선배는 평범한 샐러리맨 아내다. 알뜰한 그녀 취미는 요리다. 요리 솜씨가 뛰어나다. K선배는 요리만 잘하는 게 아니다. 정리정돈을 잘 하는 수납의 달인이기도 하다. 모임에 나올 때마다 수납요령에 관한 팁을 한두 가지씩 알려 줄 정도다. 우린 K선배한테 그 솜씨로 돈을 벌라 했다. 돈을 벌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K선배는 늘 망설였다. 이 모임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J와 K선배 둘 뿐이다.
이런 얘기가 흘러나왔다. K선배가 말했다. “이젠 정말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아이들한테 사교육비용이 많이 들어서 남편이 힘들어 해.” 옆에 있던 J선배가 말했다. “이미 늦었어. 지금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우리 같은 주부는 가만히 있는 게 돈 버는 거야. 안전지대는 남편 품이라고!”
얼마 후, J선배 남편이 뇌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두 아들은 미국 유학 중이었다. J선배는 사별의 아픔에서 벗어날 무렵 남은 가족 생계를 걱정하는 가장으로서의 현실을 마주했다. 버는 사람은 없고 쓰는 사람만 남았다. 유학생 두 아들의 송금방법도 몰랐다. '가만히 있는 게 돈 버는 거'라 말한 J선배가 남편 유산으로 얼마나 버틸지 걱정이다.
J선배를 보며 충격에 빠진 사람은 K선배였다. K는 남편의 품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이가 문제라며 꽁무니를 뺀다. 결국 남편도 나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다.
일 하고픈 중년의 전업주부는 고민이 많다. 폼 나는 일은 경력이 없고 전문성도 부족하다.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순노동조차 경력자가 유리하다. 사회생활을 해 본적 없는 전업주부라고 겁먹을 필요가 있을까. 초짜라도 달인처럼 잘 하는 게 대한민국 아줌마 힘이다. 직업 접근성도, 인맥도 퇴직한 남편보다 사회초년생 아내가 훨씬 뛰어나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3>꼭 물어봐야 아나?](https://img.etnews.com/photonews/1711/1011910_20171110131838_007_0003.jpg)
몇 년 뒤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행동해야 한다. 가정경제는 남자의 몫이라 주장하는 남편이라면 천만다행이다. 만약 내 남편의 진심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생각한다면 망설일 게 없다. 시작이 반이다. 남편에게 묻지 말고 선포하라. 그런 당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가 남편이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