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일 동안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은 큰 시련에 봉착했다.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승인 기준 9위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이 한국 정부와 기업이 추진하던 대형 경제 협력 사업을 줄줄이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올해 수교 25주년을 맞는다. 고려인 강제 이주 8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1937년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허허벌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들의 후손이 살아가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우즈베키스탄에 정권 교체가 일어나면서 독립국가연합(CIS) 산업 진출 교두보가 될 여러 사업을 재검토하겠다는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일찌감치 주요 사업에 컨소시엄을 꾸려서 참여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이미 법인을 설립했거나 전문 인력을 투입한 상태였다. 사업이 중단되면 국내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에 100일의 시간이 펼쳐졌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목표는 사업 재개다.
◇100일 총력전…한국 정부의 투 트랙 외교
EDCF는 국가 간 차관 공여 형태 사업이지만 민간 기업에는 대형 해외 수주 사업을 따올 수 있는 기회다. EDCF 사업을 통해 얻은 노하우와 기술을 기반으로 다른 국가에 진출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이 잠정 중단한 사업은 한국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항공 기술을 통해 구축되는 인프라 사업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은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후 외자 유치를 총괄하기 위한 국가투자위원회를 신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 대형 EDCF 사업을 줄줄이 중단시켰다. 우리나라는 본 계약 완료 전인 5개 사업 가운데 사실상 4개 사업 취소 통보를 받았다.
국립아동병원, 전자도서관, 전자정부 통합데이터센터, 타슈켄트 국제공항 등 건설 사업이다. 규모만 3억 달러, 국내 참여 기업 수십개사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한국 정부는 긴급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외교 협상에 들어갔다. EDCF 사업이 중단되면 중소기업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졌다.
수출입은행 타슈켄트 사무소가 24시간 가동됐다. 한국 EDCF 사업을 호시탐탐 노리던 경쟁국의 로비도 골칫거리였다. 한국은 자존심을 구기지 않고 중단된 사업을 재개해야 했다.
수출입은행은 이 같은 비상 상황을 즉시 정부에 보고하고 여러 외교 경로를 통해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접촉했다. 사실 사업 중단의 이면에는 새 정권의 EDFC 사업 주도권 확장 전략이 담겼다. 한국 정부는 일방의 사업 재검토에 강한 항의와 함께 물밑 협상을 수개월 동안 진행했다. EDCF 기금 상향 등 여러 대안을 마련했다. 다만 사업 중단 일방 통보에는 강력 대응하는 전략을 썼다.
기재부·수은 등 부처 담당은 현지 근무와 협상을 이어 갔고, 지난 9월 5일 우즈베키스탄항공으로부터 마침내 공항 사업 재개 의사를 통보받는다. 이어서 보건부로부터 국립아동병원 건립 사업, 정보통신부로부터 전자도서관 건립 사업 재개 통보를 끌어냈다.
3개 대형 사업이 재개되면 주사업자로 선정된 LG CNS와 삼성물산은 물론 사업 납품을 담당하는 중소기업, 건축업, 토목 설계 업체까지 수십 곳의 국내 기업이 수출 레퍼런스를 확보하게 된다.
◇하늘과 육지·한국 IT로
타슈켄트국제공항 건설은 총사업비 4억6000만달러가 투입되는 CIS 사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한-우즈벡 간 대표 경제 협력 사업으로 공항 건설 부문에 우리 기업이 진출하는 첫 사례다.
타슈켄트공항은 우즈베키스탄의 유라시아를 잇는 지리상의 이점을 활용, 중앙아시아 여객 허브공항으로 고도화하는 것이 목표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도 화물 허브 공항인 나보이국제공항과 양대 축으로 육성한다는 로드맵을 마련했다. 신여객터미널 신축은 물론 에어사이드(유도로, 주기장 등), 공항시설, 컨설팅 서비스까지 모든 솔루션을 한국 기업이 총괄하게 된다. 9월에 사업 재개 협의가 시작됐고, 현재 컨설턴트 입찰을 위한 제안요청서(RFP)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 전자정부 시스템도 현지에 적용된다. 전자정부통합데이터 건립 사업은 최종 확정 되지 않았지만, 양국간 협의가 진행중이다. 한국형 IT가 해외로 이식되고, 한국형 전자정부의 융합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즈베키스탄은 전자정부 시스템에 국가지리정보시스템(NGIS)을 융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축될 NGIS를 전자정부 시스템에 연결할 계획으로 있다. 각 부처와 기관에서도 이러한 정보화 정책에 부응, 곧 응용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활발한 우리 IT 기업의 참여가 기대된다. 이와 함께 토종 지리정보시스템(GIS) SW를 공급, 현지화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다.
이 밖에 국립전자도서관 인프라가 도입된다. 현지 정보와 자료를 보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교육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사업이다. 20개 연계 도서관에 통신망을 구축한다. 디지털라이징센터, 멀티미디어 센터, 통합전자도서관 시스템(IELS), 포털서비스시스템(PSS)이 포함된다.
LG CNS와 KCC정보통신은 의료 인프라를 공급한다.
우즈베키스탄 의료 수준은 매우 낮다. 내국인조차 응급조치가 아니면 상당수가 외국계 의료 시설을 이용할 정도다. 수출입은행은 국내 의료기술과 인프라를 활용한 '국립아동병원 건립 사업'이 추진한다. 총 사업비만 1억달러가 넘는다. 선진 의료 서비스 구현을 목표로 첨단 의료 기자재와 병원 신축, 컨설팅 서비스를 포함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출산율은 높지만 의료 시설이 낙후, 영아사망률이 높다. 한국 정부는 아동병원 건립을 시작으로 종합병원 구축 사업도 검토하고 있다. 선진 의료 시스템이 도입되면 아동 질환 임상 연구 기회를 갖게 되고, 아동 의료 수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사업이 성공리에 수행되면 보건 의료 부문에서 한국의 대외 위상은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국산 의료장비와 기술력 인지도 향상 등 후속 사업 수주 효과도 기대된다.
우즈베키스탄이 포함된 CIS 국가는 도입 초기 단계에 있다. 인접 국가 상황도 유사하다. 3개 사업을 성공리에 수행하면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진출에도 속도가 붙게 될 전망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우즈베키스탄은 1992년 수교 이래 400여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는 주요 CIS 국가”라면서 “앞으로 한국 정부는 EDCF를 통해 국내 기업의 현지 진출이 유망한 사업을 발굴하고 다양한 사업을 집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연된 다른 사업들도 곧 재개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IT 기반 우편망 현대화 사업, 가스공사(UNG) 생산관리시스템 구축, 슈르탄가스화학공장 증설, 탄화수소 열분해플랜트 사업 등 에너지 기반 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후속 사업도 예상된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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