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 3사의 고객 정보 유출 이후에도 교육, 방송, 여행, 도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고가 줄을 이었다. 개인 정보 '상실'의 시대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개인 정보 이야기만 나와도 몸서리치는 '트라우마형'이다. 회원 가입이나 개인 정보 수집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반감을 품는다. 내 개인 정보가 외부에 저장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다른 유형은 '포기형'이다. 광고성 전화가 많이 오면 '유출된 개인 정보가 이렇게 쓰이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사실상 전 국민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는데 이제 와서 보호해 봤자 무슨 소용 있겠느냐며 푸념한다. 개인 정보의 '가치'와 '주체' 상실로 요약된다. 개인 정보와 관련해 무조건 방어·포기하는 것은 정보가 담는 가치 인식 기회를 없앤다. 개인 정보 보호 또는 활용을 두고 정부, 기업, 시민단체가 줄다리기를 벌이지만 정작 '주체(개인)'는 별 관심이 없다.
의료 정보 활용을 둘러싼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병원, 기업은 각종 의료 정보 분석으로 환자를 맞춤형으로 치료하는 '정밀의학' 구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을 손질해서 빅데이터 활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에 시민단체는 이들이 환자 정보를 '상품화', 영리를 추구한다고 반대한다.
정작 정보를 제공하는 개인은 의료 정보가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병원과 기업이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모른다. 연구 목적으로 수집할 때 개인 정보 동의서를 받는다. 그러나 깨알 같은 문자를 모두 읽어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집중도가 떨어진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개인의 의료 정보 수집과 인센티브 제공 시스템이 활성화됐다. 연구 목적과 수집 데이터, 활용 과정, 혜택 등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동기 부여와 의료 정보에 관한 폭넓은 이해를 높인다. 이 영역에서 주체는 병원, 기업, 정부가 아닌 '개인'이다. '자발 참여 의학' 패러다임의 꽃을 피운다.
의료 정보는 미래에 가장 가치 있는 데이터로 손꼽힌다. 국내에서는 활용과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다. 주체(개인)에게는 가치 판단을 위한 정보가 부족하다. 정부, 병원, 기업 등 이해 당사자가 의료 정보의 가치를 알리고 개인에게 선택권을 주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