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대학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화두는 제조업을 근간으로 한 산업 현장에서 대두됐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선발 주자격인 독일 '인더스트리 4.0'과 후발 주자격인 중국 '중국 제조 2025' 전략이 대표한다. 독일은 이제 저만치 앞서 가고 있고, 중국 제조업은 우리나라를 바짝 추격해 2~3년 안에 대등한 수준까지 치고 올라올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의 발원지는 대학이다. 대학에서 얘기되기 시작한 4차 산업혁명이란 화두를 클라우드 슈바프가 던진 것일 뿐이다. 초연결(超連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등 연구 실적 역시 모두 대학에서 나왔다. 수학과 통계학을 근간으로 한 대학의 제어 기술과 통계 분석 지식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제 완전히 새로워진 경제, 산업, 조직 구조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사회 체제의 본질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사회·경제 주체는 좋든 싫든, 자의든 타의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파괴적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은 대학 자체의 현실은 어떨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학은 얼마나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고 이끌어 왔는가.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 현장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모든 분야의 격변을 예고한 가운데 대학만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우리는 냉정하게 답해야 한다. 대학의 존립을 엄습하고 있는 위기론의 정체에 더욱 냉철해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기 변화를 주창하는 주체로서의 대학은 이제 학령인구 감소라는 외형 변화뿐만 아니라 교육 자체의 변혁과 근본 역할에 더욱 분명한 답을 해야 할 때다. 과연 우리 대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학 교육의 일관성과 불변성만을 얘기할 게 아니라 앞으로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주체로서 근본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더 큰 배움이 더 큰 어려움을 해결하고, 이상을 현실로 변화시키게 할 것이라는 교육의 갈망에서 비롯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전국의 280여개 4년제 정규 대학과 143개 전문대학이라는 외형 확장은 분명 교육의 갈망뿐만 아니라 산업화 시대를 넘어 정보화 시대를 열어젖힌 순기능적 역할론으로 이어졌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대학의 무분별한 외형 팽창은 결국 역기능으로 작용하면서 대학 위기는 물론 교육 위기를 자초한 원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대학은 시대 변화에 둔감한 것인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파괴적 혁신은커녕 엄중한 현실에 눈감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해야 할 대학의 위기는 과연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우선 대학의 자율권을 대폭 허용해야 한다. 교육 당국부터 바뀌라는 것이다. 변화의 주체는 대학이어야 하고, 대학은 스스로 그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대학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전공의 넓은 스펙트럼과 고정된 학제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설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대학 자체로도 잘할 수 있는 장점 중심으로 실용의 전공 영역을 개발하고, 그에 따르는 학제 개편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 특성에 맞는 교육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대학은 이제 더 이상 학문의 전당이란 전통의 가치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만약 청년 실업이 문제라고 치자. 그렇다면 청년 실업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실업률 자체를 없앤다기보다 낮춘다는 현실성 있는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학령인구 감소에는 대학 자체로 대응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가치관 변화에 따라 낮아지는 대학 진학률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교육 당국이 주도하고 있는 정원 감축, 지원 차등화, 강제 퇴출 등 방법론은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예컨대 대학 자체의 특성화를 전제로 대학 간 컨소시엄을 구성, 해외로 진출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평범한 진리일수록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법이다. 대내외로 몰아치고 있는 국가 산업·경제 위기는 대학에서부터 준비하고 대처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학 위기는 국가 위기나 같다. 대학 내에서부터 소통과 통합만을 내세우는 선비형 리더십보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거침없는 실사구시(實事求是)형 리더십과 육영사업의 의미를 이해하는 대학의 혁신 경영철학이 절실히 요구된다.
양성현 광운대 전자공학과 교수 shyang@kw.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