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터넷 상호 접속 기준에 따른 요율 재산정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해 관계자들이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케이블TV와 콘텐츠사업자는 불합리한 제도 개정으로 내년 상호 접속료가 폭등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반면에 통신사는 정당한 망 이용 대가를 받기 위한 첫걸음을 뗀 만큼 새로운 제도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변경된 상호 접속 제도가 처음으로 전면 적용되는 만큼 인터넷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호 접속료 오르나
새로운 상호 접속 기준이 논란인 이유는 내년부터 상호 접속료가 오를 것으로 보는 사업자가 많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6년 1월부터 변경된 상호 접속 체계를 적용하되 2년 동안 시행을 미뤘다. 올해 말 유예 기간이 끝나고 내년부터 변경된 상호 접속 기준이 전면 적용된다.
상호 접속료는 '접속통신요율×트래픽' 공식에 따라 산출된다. 트래픽이 많아질수록 접속료가 오르는 구조다. 이에 따라서 접속통신요율을 얼마로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미래부가 2년에 한 번 요율을 결정하기로 했다. 오는 연말이 요율 결정 시기다.
정부는 해마다 증가하는 인터넷 트래픽을 고려, 상호 접속료가 급등하지 않도록 두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우선 접속통신요율 상한을 정했다. 데이터 테라바이트(TB)당 가격 상한을 설정하고 그 이상 요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상한 이내에서 사업자 자율 협상으로 접속료를 정한다.
그러나 트래픽이 급증하면 접속료는 급등할 수 있다. 그래서 2015년과 비교해 접속료 오름 폭이 4.4%를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상한을 두 번 씌운 것이다. 정부가 두 개 상한을 내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통신사에 상호 접속료를 지불하는 입장인 케이블TV(SO)와 콘텐츠사업자(CP)는 상한을 낮추는 것은 물론 접속료가 내리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기존 제도에선 통신사 경쟁에 따라 해마다 접속료가 내려갔는데 변경된 상호 접속 체계에선 통신사 경쟁이 사라지면서 해마다 오르는 구조가 됐다는 게 불만 핵심이다.
상호 접속을 제공하는 통신사는 새로운 제도에서 상호 접속료 급등은 없고 오히려 내릴 것으로 보는 입장이 확고하다. 다만 CP 트래픽이 급증하면 이에 따라 망 사용 대가가 상향 조정될 수 있다는 점에는 통신사도 동의한다. 지금까지 '헐값'에 이용하던 통신망 이용료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는 게 통신사의 관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접속통신요율과 접속료 상한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내부 방침을 정리하고, 이해 관계자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면서 “기한을 정하지 않고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쟁 실종?
인터넷 상호 접속은 인터넷망을 서로 연결해 이용자가 마음껏 인터넷을 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망 규모가 큰 사업자(상위 계위)와 작은 사업자(하위 계위)가 있다면 아쉬운 쪽은 하위 계위이기 때문에 상호 접속 시 하위 계위 사업자가 접속료를 지불하고 상위 계위 사업자의 망을 이용한다.
주로 통신사는 접속료를 받고, SO는 지불하는 처지다.
그런데 비용 등 문제로 상위 계위에 직접 연결(직접 접속)하지 못하고 중간에 다른 사업자를 통해 연결(중계 접속)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주로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중계 접속료가 직접 접속료보다 두 배에서 세 배 이상 비싸다. 직접 접속을 하지 못하는 중소 SO 사업자의 부담이 크다.
SO 관계자는 “한 사업자가 인터넷을 독점하던 10년 전 가격을 그대로 반영한 탓에 벌어진 참사”라고 강력 비판했다.
더욱이 비싼 중계 접속료의 대부분은 트래픽 최종 기착지의 상위 계위 사업자가 가져가도록 설계됐다. 중간에서 중계 접속을 제공하는 사업자는 별 이익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위 계위인 통신사가 중계 접속 유치 경쟁을 하지 않게 됨으로써 접속료가 내리지 않는다는 게 SO의 주장이다. SO는 상호 접속 시 통신사도 이익을 보는 측면이 있는데 무조건 접속료를 SO가 내도록 한 데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불똥은 CP로도 튀었다. CP는 상호 접속 대상은 아니지만 변경된 상호 접속 체계의 영향권 안에 있다.
A통신사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CP에 전용회선을 제공한다고 가정하면 CP에서 트래픽이 발생, 다른 B통신사로 넘어갈 경우 상호 정산 원칙에 따라 A가 B에 상호 접속료를 지불해야 한다.
과거에는 무정산이었지만 상호 정산으로 제도가 바뀐 데 따른 것이다.
트래픽이 많아질수록 A가 부담하는 접속료도 늘고, 이 비용을 결국 CP에 떠넘길 것이라는 게 CP의 주장이다. CP 입장에서는 상호 접속료라는 원가 인상 요소만 생긴 셈이다.
CP를 유치해 봐야 상호 접속료 부담만 는다는 판단에 따라 통신사가 CP 유치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트래픽 발신 측보다는 수신 측 인터넷 사업자가 접속료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상호 접속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터넷 생태계 영향 살펴야
변경된 상호 접속 체계는 통신 시장이 데이터 중심으로 바뀌는 환경을 반영했다. 상호 접속 대상에 이동통신(무선인터넷)을 포함한 게 이를 잘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 통로인 인터넷망 투자를 장려하는 좋은 방법은 투자비 회수가 쉽도록 하는 것, 즉 종량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데이터 트래픽을 실측해서 정산하도록 한 배경이다.
쉽게 말해 인터넷 사업자는 투자비 회수가 과거보다 수월해졌다.
상호 접속료가 폭등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지만 새 상호 접속 체계의 긍정 측면을 부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호 접속 제도 변경이 인터넷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는 있다.
통신사가 중소 SO의 직접 접속을 교묘히 방해하거나 정부가 정한 상한 이상으로 접속료를 받는 행위를 단속해야 한다.
CP 접속료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통신사가 자사 서비스 트래픽에만 과금하지 않는 '제로 레이팅'을 한다면 불공정 경쟁 논란이 예상된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CP와의 역차별 논란은 가장 큰 숙제다.
해외 CP는 망 사용료를 거의 내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CP가 상호 접속료 부담까지 떠안는다면 심각한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
상호 접속 제도 변경을 근거로 국내 인터넷 사업자가 글로벌 CP와의 협상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