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우리나라에서 온·오프라인 아이폰 개통 권한을 확보, 이동통신 유통시장 격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내달 오픈하는 애플스토어 1호점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온라인에서도 아이폰·아이패드 개통시스템을 가동한다. 애플이 국내 아이폰 유통 시장을 독점하는 건 시간문제다.
◇韓 아이폰 유통구조 어떻게 바뀌나
애플이 이통사로부터 대리점 코드를 받으면 국내 아이폰 유통구조는 일대 변화에 직면한다.
그간 애플코리아는 홈페이지와 프리스비, 에이샵, 윌리스 등 공식 지정한 리셀러 매장을 통해 아이폰 공기계만 판매했다. 소비자는 공기계를 구입하고 휴대폰 유통점에서 이통사 서비스에 가입하는 방식이었다. 애플이 개통 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말+서비스' 결합 판매가 불가능했다. 약정 아이폰 판매는 이통사 온라인몰, 대리점, 판매점 등 유통점에서만 권한이 있었다.
앞으로 이 같은 아이폰 유통구조가 달라진다. 기존 이통사 약정 아이폰 판매는 종전처럼 유지된다. 하지만 애플을 중심으로 한 신(新) 유통체계가 만들어진다. 소비자는 애플스토어 또는 애플코리아 홈페이지에서 아이폰을 구입하고 개통까지 완료할 수 있게 된다. 공기계를 갖고 휴대폰 유통점을 방문하는 과정이 생략된다. 아이폰 구매 고객이 중소 유통점을 찾는 비율은 기존보다 대폭 줄 수밖에 없다. 애플이 유통망 파괴 주범으로, 중소 유통망 생태계 붕괴를 초래하는 포식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애플이 대리점 코드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판매점 선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프리스비, 에이샵, 윌리스 등 아이폰 리셀러 매장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로부터 사전승낙을 받은 이후, 판매점 역할을 할 수 있다. 애플스토어와 마찬가지로 기존에 공기계만 판매하던 것에 더해 이통사 약정폰 판매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애플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지치기식'으로 유통망을 장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아이폰은 충성고객이 가장 많은 제품”이라면서 “애플이 온·오프라인 아이폰 개통을 개시하면 애플 직접 판매량이 기존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애플은 왜 아이폰을 개통하나
애플이 국내에서 온·오프라인 아이폰 개통시스템을 갖추는 배경이 관심이다. 일본 애플스토어 매장에서는 KDDI, NTT도코모 등 아이폰 개통을 지원하지만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공기계만 판다. 온·오프라인 아이폰 개통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현재까지 미국이 유일하다. 애플 미국 홈페이지에서는 AT&T, 스프린트, T모바일, 버라이즌 개통을 지원한다. 애플의 국내 아이폰 개통은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아프리카, 인도, 남미 등 온라인 공식 판매를 지원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현지 이통사 온라인 사이트를 애플 홈페이지와 연동하거나 가까운 매장을 안내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애플스토어는 지사(애플코리아)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닌, 본사가 직접 운영하는 매장이다. 애플스토어를 설립한다는 것은 해당 국가에서 유통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애플은 국가별 시장상황을 고려, 다른 판매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공기계 구매율이 8% 수준으로 휴대폰 소비자 90% 이상이 이통사 약정폰을 구입하고 있다. 애플스토어를 국내에 여는 만큼 온·오프라인에서 공기계 판매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아이폰은 2분기 애플 매출의 62.9%를 차지했다. 4년 전보다 약 10%포인트(P) 증가했다. 아이폰 영업이익률이 상당하다. 지난해 애플 아이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389억5900만달러, 449억9700만달러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32.4%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영업이익률보다 약 3배 높다. 화웨이, 오포, 비보 등 중국 제조사보다는 6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매년 거의 한 개 모델을 출시하는 애플이 글로벌 스마트폰 전체 영업이익 중 차지한 비율은 79.2%다. 14.6%를 차지한 삼성전자와 격차가 크다. 애플이 '돈 되는 아이폰' 유통력을 지속 확대해 나갈 거란 방증이다.
◇파장은
애플이 국내에서 아이폰 개통 권한을 갖게 되면 다른 제조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 제조사가 직영체제로 온·오프라인 단말기 판매·개통 권한을 모두 가져오는 건 애플이 처음이다. 본사가 판매 자회사에 유통 사업을 이관하거나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전자 판매'는 삼성디지털프라자 등 국내 모바일 유통 사업을 맡고 있다. 온·오프라인 스토어에 스마트폰 개통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지만, 삼성전자 직영체제가 아니라는 점은 애플과 대조된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자회사 하이프라자가 스마트폰 유통을 포함한 LG베스트샵 사업을 맡고 있다. LG베스트샵 매장에서는 스마트폰 판매 및 개통 업무를 진행한다. 온라인 판매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제조와 유통 영역을 확실히 구분했다. LG전자가 이통사에 스마트폰을 공급하면 LG베스트샵이 이통사로부터 다시 제품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소니는 국내에서 스마트폰 직영점 한 개를 운영 중이다. 온라인 판매는 SK텔레콤 티월드다이렉트, KT 올레숍, G마켓 등 제휴 쇼핑몰에서만 진행한다. 직영몰은 없다. 화웨이는 국내에 온·오프라인 판매처를 두지 않고 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P9·P9플러스를 출시했을 때 홍대 인근에 체험 매장을 한시 운영한 것이 전부다. 대신 직영 사후서비스(AS) 매장을 운영 중이다. TCL-알카텔모바일 역시 온·오프라인 판매처를 두지 않고 이통사, 알뜰폰을 통해서만 판매한다.
외산폰 업체 관계자는 “제조사가 한국에서 직영으로 온·오프라인 개통 권한을 갖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애플이 한국시장에서 막강한 입지와 영향력을 보유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스마트폰 시장 전문 연구원은 “애플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온·오프라인 개통시스템을 갖추는 건 아이폰 고객 충성도를 고려, 대다수가 공식 판매처를 통해 아이폰을 구입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나라 아이폰 유통 구조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이고 유통점은 줄줄이 고사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