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가 소유한 2015년식 폭스바겐 '골프 2.0 TDI'는 지난해 인증 취소 직후 불과 며칠 만에 중고차 가격이 약 20% 떨어졌다. 디젤차 부정 여론이 확산되면서 차량을 매도하고 싶었지만 신차 판매가 중단된 차를 제값에 매입해 주는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예 매입 자체를 거부하는 딜러도 있었다.
수입차 업계의 잇따른 부정 인증으로 소비자 피해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나 관련 업계 모두 시원한 해결안을 내놓지 않은 채 소비자 피해를 외면하고 있다. 디젤 게이트로 물의를 일으킨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수십조원에 이르는 피해 보상안을 제시했지만 국내에서는 소비자에게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했다.
중고차 전문 쇼핑몰 SK엔카닷컴에 따르면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인 2015년 10월부터 2016년 7월까지 폭스바겐 중고차 시세는 평균 11.9% 하락했다. 같은 기간 벤츠(8.5%), BMW(7.6%)의 평균 시세 하락률보다 하락 폭이 컸다. 2015년식 폭스바겐 골프 2.0 TDI(7세대)는 1년 사이 16.1%가 떨어져 하락 폭이 가장 컸다.
피해는 소비자 몫으로 남았다. 환경부는 “인증 취소나 과징금 등 행정 처분은 수입사에 내려지는 것”이라면서 “기존 차량 소유자의 운행이나 매매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피해 보상 관련 정부 차원의 대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폭스바겐은 이달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주정부가 제기한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관련 소송에서 6900만달러(약 750억원)를 내는 조건으로 소송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폭스바겐과 뉴저지주의 합의는 미국 내 디젤게이트와 관련해 남아 있는 법정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안을 해결한 것으로 평가된다. 폭스바겐이 이달까지 미국 차량 소유주와 환경 당국, 개별 주 등이 제기한 소송 합의금으로 무려 250억달러(27조1500억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피해 보상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앞으로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내야 할 추가 리콜 비용, 민·형사상 지불해야 할 벌금 등 배상 규모가 모두 300억달러(32조58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천문학 규모의 배상안을 내놓은 폭스바겐이 국내 고객에게 제시한 보상안은 서비스센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100만원짜리 바우처 한 장이 전부다. 책임자들의 사과도 없었다. 디젤게이트 사건 당시 회사를 이끌던 경영자들은 모두 퇴사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국내 소비자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징벌성 손해배상제도처럼 강력한 소비자 피해 구제안이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들이 폭스바겐으로부터 배상을 끌어낸 것은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한 정부 제도 장치 덕분이다.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징벌성 배상제와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불법 행위를 저지른 기업이 소비자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서도록 제도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