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원자로 '시카고 파일' 실험 성공 75주년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동해상에 기습 발사해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미국 시카고대학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원자로를 설치하고 우라늄 핵분열 연쇄반응 실험에 성공한지 75주년을 맞는다.

28일(현지시간) 미국 공영라디오(NPR) 등에 따르면 1942년 12월 2일 이탈리아 출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1938) 엔리코 페르미(1901~1954) 교수가 이끈 시카고대학 실험팀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공적인 핵분열 연쇄반응을 실현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원자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페르미 교수팀은 시카고대 풋볼구장 지하의 스쿼시 코트에 '시카고 파일1'로 이름붙인 원자로를 만들고 우라늄 덩어리 속에서 카드뮴 막대를 서서히 뽑아 올려 느린 중성자가 우라늄 원자에 충돌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에너지를 지속 방출하는 과정을 확인했다.

시카고 파일1은 우라늄 6톤, 산화우라늄 50톤, 흑연벽돌 400톤으로 만들어졌다. 흑연벽돌을 57층으로 쌓아 만든 이 파일의 높이와 지름은 각각 7미터에 달했다.

시카고대학 연구혁신담당 부총장 에릭 아이작스 박사는 “이 실험은 '맨해튼 프로젝트'로 알려진 미국의 핵무기 개발 노력을 현실화한 중대한 첫걸음이었다”며 “불과 3년 만에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제2차 대전을 종료시켰으니 분명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작스 박사는 “최초의 원자력 이용 노력은 1939년 유럽 과학자들이 핵분열 에너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며 “당시 미국 과학자 대다수가 유럽 파시스트 국가 출신 난민을 포함한 국외 추방자들이었고 이들은 독일의 원자폭탄 제조 가능성을 재빨리 알아차렸다”고 설명했다.

시카고 파일1 핵 연쇄반응 실험을 주도한 페르미 교수와 리오 실라드 박사(1898~1964·헝가리 태생)도 망명객 출신이다.

NPR는 실라드 박사를 비롯한 미국 과학자 그룹이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미국이 원자폭탄을 만들지 않으면 독일이 먼저 하게 될테니 원자폭탄 제조에 즉각 착수하라”는 당부 편지를 쓰도록 했다고 전했다.

페르미 교수가 고안한 시카고 파일1의 최초 출력은 0.5W에 불과했다. 향후 세계 과학 지형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3년 만에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다.

시카고 파일1은 미국 정부가 1946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시카고 인근에 세운 최초의 국립연구소 '아르곤국립연구소' 출범 동력이 됐다.

아이작스 박사는 최근 예측불허 성향의 각국 지도자로 인해 핵무기 통제 우려가 더 커진 점과 관련해 “제어되지 않는 핵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폭탄 사용을 놓고 과학자 사이에 논란이 뜨거웠다”며 “분명한 점은 과학자가 정책 관련 토론에 참여하게 됐다는 점이며 이는 우리 사회에서 과학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