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인상했다. 2011년 6월 인상 이후 6년 5개월 만이다.
세계 경제 회복세 확대와 국내 경제 설비투자 증가 등 대내외 경제 여건이 개선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이 해빙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29일의 북한 미사일 도발은 금리 인상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 제한된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판단 근거에는 반도체 경기 호조세 등 경기 회복세 자신감이 반영됐다.
다만 반도체를 제외한 생산 기업과 중·소상공인에 미치는 악영향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 하락 때문에 기업의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는 점도 우려 사항으로 남았다.
또 금리 인상으로 14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와 100만명에 이르는 한계 가구, 130만명의 영세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만큼 앞으로의 추가 금리 인상에는 신중론이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30일 한국은행은 다음 통화 정책 방향 결정 때까지 기준금리를 1.25%에서 0.25%포인트(P) 상승한 1.5%를 유지한 통화 정책을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9차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경기 호조세에도 동결을 결정하는 등 대내외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정보기술(IT) 업종 수출 호조세, 주택 경기 안정화, 물가 상승 등으로 금리 인상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세계 경제 회복세가 확대되는 움직임을 지속했고, 국제금융 시장도 주가가 완만한 오름세를 나타내는 등 안정세를 보였다”면서 “앞으로 통화 정책 완화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 기준금리 인상은 지난달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에 소수 의견이 나온 뒤 기정사실화 돼 왔다. 게다가 금통위 이후 발표된 각종 지표에서는 한국 경제 회복세를 반영하는 지표가 연이어 나왔다.
한은이 발표한 11월 BSI 조사 결과 제조업은 전월 대비 2P, 비제조업은 3P 각각 오름으로써 지난 9월 수준을 회복했다. 제조업에선 자동차 업종이 연말 프로모션 마케팅과 중국 수출 회복세 기대로 전월보다 6P 뛰었고, 1차 금속도 자동차 호조로 같은 폭의 상승을 보였다.
각종 경제 지표에도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밝은 것으로 반영되고 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8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에서 0.6%P 상향 조정하는 등 경기 개선세가 뚜렷하다고 판단했다.
주변 여건도 한은이 긴축으로 돌아서게 하는 분위기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다음 달 금리 인상을 강력히 시사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 지명자는 지난 28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기준금리를 정상화할 때”라면서 “금리 인상 여건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추가 인상이 이뤄지면 미국 기준금리는 현 1.00~1.25%에서 1.25~1.50%로 오르게 된다. 한국과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산업계에 분 훈풍이 기준금리 인상에 영향을 미친 만큼 산업 전반에 주는 충격은 적을 것으로 분석됐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업종의 경우 차입금도 업계 평균보다 낮아 금리 인상 부담이 덜하며, 수출 증가 등에도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반도체 업종 경기는 1~2년 호조세를 이어 갈 것이라고 낙관했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금리 인상이 IT 등 업종의 경기가 좋아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들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반도체를 제외한 업종과 중소기업을 비롯한 소상공인은 대출금리 상승과 환율 하락 등으로 다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은 성장과 소비 등 각종 경제 지표 호전에도 정작 내수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실제 12월 중소기업 업황 전망 건강도지수(SBHI)는 89.1을 기록했다. 100 미만인 경우 경기 전망이 비관이라는 의미다. 특히 중소기업 경영 어려움 1순위로 응답 기업 53.5%가 내수 부진을 꼽을 만큼 체감 경기가 부진하다.
이처럼 중소기업은 정작 경기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는 중소기업 경영 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권은 추가 대출금리 인상 조치와 함께 중소기업 대출 심사 태도의 보수성을 강화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실제 최근 비은행 금융기관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80조원 수준이던 비은행 금융기관의 대출 잔액은 10월 현재 105조원으로 증가했다. 저축은행 기업대출 금리는 10월 현재 8.15% 수준으로 예금은행 대출금리(3.67%)의 2배를 웃돈다.
오진균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대출 금리 인상으로 인해 중소기업의 채무 부담 가중이 우려된다”면서 “특히 영세 자영업자와 한계기업 등 취약 계층의 위험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리 상승에 따라 변동금리로 돈을 빌린 가계의 부담 증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면에 14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의 상승 억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지난달 은행의 가계 변동대출 금리 비중(신규 취급액 기준)은 72.7%로 전월보다 2.7%P 높아졌다. 1년 전(54.3%)보다 18.4%P 높아진 것이다. 고정금리 대출보다 이자가 싼 변동금리 대출을 택한 가계가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금리 상승 자체가 크지 않고, 이미 장기금리에는 금리상승분이 반영돼 있기 때문에 시장의 충격은 미미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 대책 등으로 일부 대출 억제 효과는 있겠지만 단순히 금리 상승만으로 가계부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 연구위원은 “오히려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가계에는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나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