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7>대기업 취직 유감](https://img.etnews.com/photonews/1712/1021812_20171208160424_226_0001.jpg)
대학을 졸업한 친구 결혼소식은 은행 대기 순번표처럼 들려 왔다. 아홉수를 넘기면 결혼 기회도 없다고 서두르던 시절이었다.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따로 스터디까지 했다. 남녀차별 없이 뽑는다는 외국계 회사가 목표였다. 전공과 무관한 주산, 부기, 컴퓨터, 타자를 따로 배운 친구가 취업 망을 뚫었다. 친구 따라 컴퓨터, 타자 학원에 등록했다. 취업할 수만 있다면 닥치는 대로 배웠다.
취업이 요원하자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을 종용했다. 기다리다 외국계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달달 외운 면접영어와 각종 1급 자격증 덕분이었다. 대부분 회사는 여자가 결혼하면 자동 퇴사가 원칙이었다. 취업 유효기간은 그토록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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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딸이 대학을 졸업한 지 1년이 지나 대기업 S사에 입사했다. 친구는 대학에 들어갔을 때보다 더 기뻐했다. 지난 해 딸 취업 걱정하는 친구에게 '남의 얘기'처럼 조언했다가 절교당할 뻔 했다. 대기업 '입사재수'를 하느니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돈도 벌고 경력도 쌓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고되기는 해도 일은 훨씬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어줍지 않게 충고했다.
'남의 얘기라고 쉽게 말 한다'며 펄쩍 뛰었다. 중소기업에 잘못 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월급도 차이도 많이 난다, 복지 혜택도 별로다. 대기업이 아니면 시집도 좋은 데로 못 간다고 했다.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일종의 혼수'인 줄 몰랐다.
그 친구는 사위가 중소기업이면 싫다는 말도 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도 대기업에서 만든 식품은 안심하게 된다. 이름 모를 회사가 만든 음식은 의심이 간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그러니 '안전빵'이 제일이다. 사람도 대기업이 좋다'는 비논리를 그럴 듯하게 설파했다.
아버지는 공무원에 관심이 없던 나를 두고두고 볶았다. 여자직업으론 공무원이 최고라고 강조하셨다. 아버지도 '안전빵'을 원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면 7급 공무원시험을 목표로 했다. 요즘은 시험이 어려워져 9급도 어림없다. 올해 공무원 준비생만 72만명에 달한다. 정부는 공무원 수를 더 늘리겠다고 한다. '안전빵'으로 가득 찬 나라에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7>대기업 취직 유감](https://img.etnews.com/photonews/1712/1021812_20171208160424_226_0003.jpg)
맏동서는 대학 졸업 후 '1등 신부'가 되기 위해 신부 수업 받은 걸 자랑했다. 요리, 꽃꽂이, 다도, 예절교육 등이었다. 결혼 전 취직을 했었다는 내 얘기를 듣고 '좋은 가문일수록 직장에 다니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교양 있게 비웃었다. 자신을 조선시대 명망 있는 사대부집 며느리로 착각한 것이다. 요즘은 이런 '일없이 교양 있는' 며느리를 반기는 시부모가 없다. '얼굴 못생긴 건 참아도 직장 없는 며느리는 못 참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직장이 혼수라는 말, 실감 난다.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시험공부만 하는 게 아니다. 일부 지원자는 서류전형부터 돈을 쓴다. 지원서 사진하나 찍는데 몇 만원에서 십 수 만원이다. 자기소개서도 전문가 손길을 빌린다. 면접 코칭도 받는다. 대입을 위한 사교육비에 적지 않은 돈을 쓰고도 졸업 후 돈 벌려고 또 돈을 쓴다.
대기업 연봉은 들어간 돈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높다. 혼수가치도 있다하니 대기업에 목매는 사정도 이해는 한다. 며칠 전 중소기업 하는 동창생을 만났다. 그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회사가 작다고 비전까지 작은 건 아닌데….'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