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경제성장률 3% 회복을 목전에 뒀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산업 수출 호조 덕분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 때문에 세계 경기 회복의 온기가 오롯이 전달됐다. 또 당분간 성장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선진국은 물론이고 신흥국에 이르기까지 무역기술장벽(TBT)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이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 비관세장벽을 강화하는 가운데, TBT는 가장 뚫기 어려운 철옹성으로 불린다. 중소기업에게는 더 어려운 난공불락의 요새다. 기업들은 TBT로 인한 수출 애로를 넘어 경영난까지 호소하기도 한다. 국가기술표준원과 본지는 산학연관 전문가들과 함께 최근 TBT 현안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점검하는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TBT 대응을 국정 과제에 포함시키고, 국가 거버넌스 차원의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또 기술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와 함께 정부 및 대-중소기업간 유기적 협업 네트워크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참석자(가나다 순)
△김봉석 LG전자 상무
△김재희 한국산업기술시험원 본부장
△서정민 숭실대학교 교수
△안병화 국가기술표준원 기술규제대응국장
△이진면 산업연구원 본부장
△최갑홍 성균관대학교 교수
※사회=양종석 전자신문 부장
◇사회=TBT가 왜 중요한 무역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지 설명해 달라
◇안병화 국가기술표준원 국장=미국의 세탁기와 태양광 세이프가드 발동을 비롯해 중국의 사드 보복 등 무역 시장에서 자국 이익 극대화 기조가 뚜렷하다. 여기에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뿐만 아니라 대다수 개도국까지 비관세장벽인 TBT를 대폭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WTO에 통보된 TBT 건수가 2336건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배경이다. 이에 따라 비관세장벽의 핵심인 TBT 대응이 국가적인 과제로 부상했다.
◇이진면 산업연구원 본부장=TBT 영향에 대한 정량적인 분석은 사실 오래 전부터 진행됐다. 하지만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 TBT는 단기적으로는 수출에 부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기업은 기술장벽 대응에 당장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 특히 중소기업의 대응이 힘들다. TBT 유형도 다양하다. 관련 정보를 신속하고 빨리 수집해야 하는데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일단 접근하기가 어렵다. 이에 따라 국가 주도의 정보 수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표원이 몇 년 전부터 산업계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정보 수집을 하는데 이런 대응이 더 확대돼야 한다. TBT 대응에 성공하면 수출국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고 안전성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또 다른 기회로 봐야 한다.
◇사회=실제 기업들에게 TBT는 왜 중요한가. 그리고 어떤 대응 전략을 펼쳐야 하나
◇김봉석 LG전자 상무=TBT는 기업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는 수출주도형이다. 국가적으로 사활이 걸렸다. 최근 TBT 규제동향을 보면 선진국은 유해물질 규제를 강화한다. 개도국들은 기존 선진국의 안전, 에너지 규제를 따라가는 추세다. TBT 대응 방안으로는 연구개발(R&D) 투자 강화가 핵심이다. 단기적으로는 어렵고 장애로 작용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 확보의 열쇠다. 또 수출 기업은 자사 주력 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계속해야 한다. 규제를 만드는 단계부터 산업계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제·개정된 규제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모니터링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를 갖춘 기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이 더 많다. 상품기획 단계부터 TBT 대응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 정부와의 협력도 긴밀하게 이어가야 한다.
◇사회=최근 각국은 관세장벽은 낮추는 대신 TBT를 강화하는 추세가 역력하다. TBT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통상환경 흐름이 궁금하다.
◇서정민 숭실대 교수=우리나라 수출이 회복 추세인데 장기적 반등인지는 이견이 있다. 글로벌 저성장 추세도 여전하다. TBT를 중심으로 비관세장벽이 높아진다는 인식은 공통적이다. 현재 세계 추세를 보면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메가 FTA로 중심이 넘어가는 추세였는데 주춤하다. 이런 상황에선 경성 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아닌 연성규범, 즉 자발적 규범같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을 통해 TBT를 대응할지 논의해야 한다. 최근 TBT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서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WTO 통보문을 통해 각 나라의 비관세장벽 관련 법제도를 조사하고 분석했는데, 개도국 TBT 강화로 전기전자 분야에서는 수출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수출 증진에 도움이 되는 측면을 인식해야 한다. 다른 분야는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기술 규제에 적절히 대응하고 조화가 되면 오히려 수출을 증진시키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또 통상협정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RCEP 협상 등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다면 자국 우선주의에 대응할 수 있다.
◇사회=양자 및 다자 FTA 협상 과정에서 우리 기업 입장을 반영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부는 기업 지원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궁금하다.
◇안병화 국장=민관합동 컨소시엄을 통해 WTO TBT위원회 통보문 분석을 비롯해 조사 분석과 기업 애로 대응까지 신속하게 하고 있다. 앞에서도 지적된 바와 같이 신속한 정보 수집과 전파가 중요하다. 또 TBT위원회에는 통보되지 않지만, 기업을 어렵게 하는 '숨은 규제'가 있다. 이런 것을 입수해 기업에 전달한다. 또 KOTRA, 시험인증기관 등과 협력해 해외 TBT 관련 웹사이트 분석해서 정보를 발굴하고 있다.
◇사회=정부 TBT 대응 인력은 부족하지 않나
◇안병화=국표원 단독으로 수행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를 비롯한 27개 업종 단체, 전문기관과 연합한 TBT 대응 컨소시엄을 구성해 정보 수집을 하고 공개하고 있다. 대응 업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구심점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고 TBT 컨트롤타워를 만들려 한다. 가칭 'TBT지원센터' 설립을 진행 중이다. 컨소시엄 활동을 이어가고 기업 지원 등 총괄기관 역할을 한다. 내년부터 활동할 계획이다.
◇김봉석 상무=산업계는 인력이 확실히 부족하다. 특히 숨은 규제는 해당 국가의 제정기관과 밀접한 네트워크가 없으면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 것이 산업계의 애로다. 정부와 산업계가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대응해야 한다. 제품은 점차 융합되는데 정보 제공처, 컨설팅 해줄만한 기관이 많지 않다. 국표원의 핵심 역할로 가져가야 한다고 본다.
◇사회= 중기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한 TBT 대응방안을 인증기관 입장에서 조언한다면
◇김재희 한국산업기술시험원 본부장=중소기업의 해외수출 관련 인증업무를 수행하면서 몇 가지 느꼈다. 우선 중소기업의 단독 대응이 정말 어렵다. 남미에 새 규제가 생겼다고 하자. 중기는 현지에 인적자원, 네트워트가 없으니 대응이 안 된다. 대기업은 지사나 네트워크로 어느 정도 대응하지만 중기는 현실적으로 이런 자산을 보유하기 어렵다. 때문에 주력 시장에서 새 규제가 생기면 수출 실적이 부진해질 뿐만 아니라 경영난이 발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중 TBT 종합지원 과제를 수행하면서 분야별 사례 교육에 참여했다. 워낙 TBT 분야가 광범위하다. 분화, 심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좀 더 세분화해야 한다. TBT아카데미 과정을 만들어 일련의 교육 스케줄을 공표하고 전문가 모아서 인력풀 구성하고 교육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중소기업도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TBT를 방어적 관점에서만 볼게 아니라 극복의 대상으로 봐야한다. 극복하면 경쟁력이다. 때문에 중소기업 R&D 강화가 시급하다.
◇사회=산업, 학계, 연구계의 공동 대응 시스템은 어느 수준인가.
◇최갑홍 성균관대 교수=TBT는 원래 무역촉진을 위해 선진국이 만든 것인데 지금은 각국이 무역장벽으로 활용한다. 자국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TBT를 활용하는데 이를 자국법으로 인정했고,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TBT 규제는 안전, 환경, 보전, 에너지, 어린이 제품 등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우리나라는 해외규제와 자국규제를 봐야 한다. 우리도 자국규제를 활용해서 역내 산업을 보호하고 해외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 또 현재 기술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관련한 새로운 규제가 나온다.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고 기술공백을 메워야 한다.
세가지 대응 방안이 있다. 첫째 기술력 확보다. 4차 산업에 대응하는 기술공백을 메워서 모든 규제를 뛰어 넘어야 한다. 두번째는 정책력이다. 국표원이 인증제도 주관하는데 상대국의 규제 정책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중국이 한국산 배터리 안 쓰겠다고 하면 정책적 대응을 빨리 내놔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나라가 글로벌 룰 셋팅에 참여해야 한다. TBT 규제는 결국 표준과 맞닿아 있으니 표준 설립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면 선제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정보력도 키워야한다. 국제전기표준회의(IEC)는 회원국에 글로벌 표준을 자국에서 얼마나 많이 채택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쉽게 말하면 한국이 국제표준에 이만큼 부합하니 수출할 때 애로가 어느 정도 될지를 파악하게 돕겠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기업이 중동에 제품 수출을 하려 한다고 하면 정부가 중동 규제를 자세히 알려줘야 한다. 단일 기업이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정보력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TBT 대응력은 어느 정도 된다고 보나.
◇최갑홍 교수=잘 하고 있다. 정부가 국표원에 TBT 대응을 위한 '국' 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국장선에서 TBT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 나라가 의외로 많지 않다.
◇김봉석 상무='룰 메이커'가 돼야 한다는 얘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선진국은 이미 프로세스를 보유하고 있다. 개도국은 인증, 표준 관련 인프라가 없으니 대응하기 어렵다. 국가간 상호 인증제도는 굉장한 성과다. 확대되면 기업의 어려움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과거 CIS 국가에선 인증 하나가 전 국가에서 통용됐다. 지금은 각기 다른 인증서 요구해서 상당히 부담이 크다. 국가간 상호인증제도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최갑홍 교수=국제 표준 만드는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의에 참석했을 때, 국가별로 3개 계층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미국, 독일 등은 말 그대로 룰을 직접 만든다. 프랑스 영국 등 일부 국가는 룰을 직접 만들지 못하지만 빠르게 도입하고 활용하며 자기 의견을 낸다. 나머지는 팔로워다. 우리가 룰메이커에 합류하려면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의 룰을 개도국이 받아 가야 한다.
◇사회=향후 국가 TBT 관련 정책 방향을 설명해 달라
◇안병화 국장=APEC 등 협의체에서 규범적으로 우리 입장이 반영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에서 얘기가 나왔듯 상호 인증제도가 상당히 중요하다. 현재 중국과 전기·전자·안전 분야에서 협력 하고 있다. 인도와도 협의 중이다.
기업 지원 방안을 말하자면 첫째, 해외기술규제 정보를 수집하고 협력채널 접점을 넓히겠다. 기업의 어려움을 파악하는 작업도 강화할 것이다. 해외규제 당국자 초청해 정보 교류도 확대할 계획이다. TBT 대응 관련 대기업 노하우를 중소기업에 공유하는 기회도 늘리려 한다. 중기는 인적력과 정보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관련 컨설팅을 확대해 내실을 다질 것이다. TBT 관련 홍보도 강화한다. 장기 연구를 확대하고 정책 포럼과 연구 투자도 늘리겠다.
◇이진면 본부장=예산 확보를 위해 TBT에 대한 국민 인식 수준도 높여야 한다. 그동안 중기와 국민의 TBT 관련 인식 수준이 낮았다. TBT는 계량화가 어렵다. 계량화 작업에 대한 연구를 확대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최갑홍 교수=더 중요한 것이 TBT관련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이다. TBT문제 뿐만 아니라 표준 문제는 거버넌스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
정리=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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