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 그들은 한국에 무엇인가]<5>망이용대가 한푼 안 내는 글로벌 인터넷 기업

[글로벌기업, 그들은 한국에 무엇인가]&lt;5&gt;망이용대가 한푼 안 내는 글로벌 인터넷 기업

올해 불거진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 사건은 대한민국 인터넷 산업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비극이었다. 통신사 등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는 막강한 콘텐츠 경쟁력을 앞세운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 횡포에 속수무책이었고, 네이버 등 콘텐츠사업자(CP)는 역차별에 울어야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가 떠안았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페이스북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책임을 떠넘겼다. 논란의 중심에 '인터넷 망이용대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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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사건, 한국 무시가 본질

페이스북 사건 본질은 인기 많은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이 우리나라 이용자를 볼모로 무모하게 인터넷 접속경로(라우팅)를 변경한 것이다. 페이스북이 우리나라 ISP와 이용자를 얼마나 함부로 대했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페이스북은 매번 미국에서 정보를 전송할 수 없으므로 지역별 서버를 두는데, 우리나라는 홍콩 서버를 이용한다. 그리고 자주 쓰는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캐시서버를 우리나라에 둬야 하는데, 여러 곳에 두면 비용이 많이 드니 KT에만 뒀다. SK브로드밴드 등 나머지 업체는 KT 중계접속을 통해 페이스북 트래픽을 받았다.

문제는 지난해 1월 한국의 상호접속제도가 변경되면서 시작됐다. 변경된 제도 핵심은 중계접속을 할 때 트래픽이 흐르는 방향으로 접속료도 흐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KT가 페이스북 트래픽을 중계하면, 중계한 만큼 접속료를 다른 ISP에 지불해야 한다. 무정산이 상호정산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변화다.

KT가 페이스북을 대신해 이 돈을 내야할 어떤 이유도 없다. KT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요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접속료만큼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이용료를 더 내거나, 아니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도 직접접속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중계접속으로 인한 접속료 문제는 말끔히 해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페이스북은 이것을 '횡포'에 가까운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KT를 통한 중계접속을 일방으로 끊고 SK브로드밴드 등에 직접접속을 하되, IDC에 캐시서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주 쓰는 정보도 매번 홍콩에서 가져와야 하는 데다 갑자기 국제회선에 트래픽이 몰리면서 속도가 느려지는 등 국내 페이스북 이용자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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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아예 공짜 이용

페이스북코리아가 국정감사에서 '라우팅 변경은 KT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맥락을 보면 얼마나 기만하는 발언인지 알 수 있다. 합리적 비용 상승에 따라 요금을 올리거나 트래픽 전송 방식을 조정해 달라고 정당히 요청한 것인데, 그것을 마치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도록 불법행위를 사주한 것처럼 둔갑시킨 것이다.

페이스북 사건을 촉발한 망이용대가는 콘텐츠사업자(CP)가 인터넷을 이용할 때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에 내는 도매비용을 총칭한다. 자체 IDC가 있는 대형 CP는 전용회선료를 내고 인터넷망에 연결하며, 없는 중소형 CP는 ISP가 운영하는 IDC에 입점하고 임차료를 낸다. 전용회선료와 IDC 임차료를 모두 망이용대가라고 부른다. 망이용대가는 철저히 사업자 간 자율 협상 영역이어서 정부가 규제하지 못한다. 글로벌 CP가 망이용대가를 내지 않아도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이유다.

글로벌 CP가 한국 인터넷을 공짜로 이용해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기원은 구글(유튜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튜브가 인기는 있지만 지금처럼 트래픽은 많지 않던 인터넷 초창기 이야기다. 한국 ISP는 유튜브 캐시서버를 사실상 무료로 자사 IDC에 입점해주는 과오를 범한다. 유튜브를 찾는 이용자가 급증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설마 오늘날처럼 트래픽이 폭증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여기에는 구글이 세계 시장을 공략할 때 사용하는 교묘한 '전술'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시장 경쟁 관계를 이용해 한 ISP에 접근, 캐시서버를 공짜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A는 안 해주고 B만 해준다면 유튜브를 원하는 이용자가 B로 이동할 것이라는 계산 아래 이뤄진 행동이다. 페이스북도 구글 전술을 모방한 것으로 분석된다. 막강한 콘텐츠 경쟁력이 없으면 흉내도 내기 힘들다.

◇인터넷 업계, 역차별에 '눈물'

인기가 높은 글로벌 CP의 막대한 트래픽을 흘려보내느라 ISP도 고생하지만, 눈문을 흘리는 것은 국내 CP다. 규모 격차 탓에 그냥도 경쟁하기 힘든데 운동장이 기울어 있으니 뛰는 것조차 벅찬 것이다.

CP는 ISP에 망이용대가를 낸다. 트래픽이 늘면 그만큼 많은 망이용대가를 부담한다. 그런데 유튜브나 페이스북은 이런 제약이 거의 없다. 여기서 매우 큰 경쟁력 차이가 발생한다.

가장 큰 차이는 화질이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은 고화질 동영상이나 가상현실(VR) 같은 다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마음껏 유통한다. 하지만, 국내 CP는 비용 부담 탓에 저화질만 내보내거나 VR 서비스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화질은 동영상 플랫폼을 선택하는 중요 기준이 됐다.

모바일 동영상 트래픽의 70% 이상을 유튜브가 독차지하고, 커뮤니티 서비스 30% 이상을 페이스북이 차지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망이용대가 문제를 전기통신사업법으로 해결하자는 움직임이 나오기도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기 힘든 사업자 간 자율 협상 영역이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