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 예산권을 기획재정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 처리가 답보하는 것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야 의견차 때문이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개정안 처리에 반대 입장이다. 추경호 의원이 선봉에 섰다. 추 의원은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R&D 예산 수립 과정에서 기재부 권한을 완전히 박탈하면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부처에서도 주요 사업 예산권 이관 요구가 잇따르고, 사업의 중요성만 강조하다 예산 적정 배분에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재부와 과기정통부가 합의한 중재안도 신뢰하지 않았다. 양 부처는 예산 한도를 두 장관이 합의해 정하기로 한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추 의원은 기재부의 독자 영역인 예산 설정권한을 다른 부처가 행사한다는 점에서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패키지' 법안인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과방위에서는 개정안 처리에 여야 간 이견이 없다. 국가재정법이 기재위 문턱을 넘으면 시급 법안으로 우선 처리할 가능성도 있다. 기재위의 부정적 행보로 인해 과학기술 행정 개선이 늦어지는 셈이다.
추 의원실 관계자는 “기재부가 지출한도, 예비타당성(예타)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국가 R&D가 차질을 빚는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기재부를 재정 총괄 기관으로 인정하면서 특정 분야 예산권을 예외로 이관하면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관 요구)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개정안 처리가 아니라 시행령 개정 등 대안으로도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반대 측 논리를 전달하고 충분한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논의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직 기재부 차관을 지낸 추 의원의 시각이 그대로 묻어난 것이라는 지적이다. '심판이 선수가 될 수 없다'는 추 의원의 주장은 앞서 예산권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기재부가 내세운 논리다.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R&D 예산권을 쥔 현 상황을 두고 '다른 종목 심판이 주심을 보는 것과 같다'는 불만도 나온다.
여당의 책임론도 나온다. 국가재정법 처리와 관련해 민주당의 실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민주당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우선 처리 시급 법안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과기 분야 대통령의 역점과제였음에도 정작 여당은 법안 통과 노력에 소극적이었다.
국가재정법 처리에 동조하는 국민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여당이 각종 개혁 법안 처리에 주력하다보니 과학 혁신 법안 처리가 후순위로 밀렸다”면서 “핵심 국정과제임을 감안하면 여당의 초동 대처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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