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6개월 내내 '논란'만 거듭…과기 혁신 거버넌스 단추도 못 뀄다

[이슈분석]6개월 내내 '논란'만 거듭…과기 혁신 거버넌스 단추도 못 뀄다

국회에서 연내 처리가 무산된 국가재정법,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은 문재인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 법안이다. 그 동안 소외됐던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타워를 복원하려는 시도다. 문재인 정부는 기초연구 확대, 청년·여성과학자 육성 등 대대적 개혁을 약속하며 출범했다. 이를 뒷받침할 거버넌스는 갖추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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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법안은 신설된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기 정책 총괄, 연구개발(R&D) 예산 심의·조정, 성과 평가의 실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 R&D 컨트롤타워의 예산권 확보가 핵심이다.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 혁신본부가 10년 전 경험한 참여정부 한계를 답습할 것으로 우려된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둘러싼 이견이 병목이다. 개정안은 국가 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주체의 변경을 명시했다. 기존에 기획재정부가 수행하던 R&D 예타를 과기정통부(법안발의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수행하도록 했다. 예타 기간을 줄이고 경제성 평가를 완화하려는 시도다. R&D 예산의 총지출한도(실링) 설정에도 과기정통부가 참여하도록 했다.

재정당국 권한을 축소하고 과학기술 총괄 부처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 때문에 6월 발의 직후부터 기획재정부 반대에 부딪혔다. 기재부는 타 분야 예타와의 형평성 훼손, 국가 재정건전성 하락을 우려했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도 정부 내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안 상정을 미뤘다.

과기정통부와 기재부는 예타권 이관을 놓고 대립했다. 부처 간 갈등이 깊어지자 국무조정실과 당·청이 나서 중재했다. 양 부처는 예타권을 '완전 이관'하지 않고 '위탁'하는 데 합의했다. R&D 예타 실권을 소관 부처에 넘기면서 나라 곳간의 '마지막 열쇠'는 남기는 대안이다.

이때만 해도 법 개정이 순탄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가 부처 간 의견 통일을 이뤘기 때문이다.

기재위가 11월 법안 상정 뒤 제동을 걸었다. 재정 건전성 하락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기존 논리가 반복됐다. R&D 예타를 기재부가 그대로 수행하면서도 예타 절차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재위 반대로 과기법 개정안의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도 멈췄다. 과방위 내부에는 유사 내용을 담은 과기법 개정안에 의견 차가 거의 없다. 과기법 개정안은 국가재정법 개정안과 함께 처리돼야 효력이 있다. 기재위보다 법안 상정은 빨랐지만 '형제 법안' 처리 지연으로 발이 묶였다.

두 법안은 문 정부 출범 전부터 제기된 과학계 요구 사항을 구체화한 것이다. 국회가 민의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대통령 선거 기간인 4월 원탁토론회에서 새 정부가 과학기술 정책을 아우르는 통합 조직을 설치하고, 이 조직이 실질적인 예산 배분권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도 같은 달 기자간담회에서 “과학기술 전담부처가 과기부, 과기처, 혁신본부, 부총리급 조직 등 다양한 형태로 시도됐지만 결국 교과부, 미래부처럼 통합 체제로 됐다”면서 “새 정부에서는 각각의 취약점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 정부의 과기 정책 총괄 조직이 어떤 형태든 과거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문재인 정부가 신설한 과기혁신본부는 참여정부 시절에도 운영됐다. 당시 과기혁신본부는 '선수심판론'에 묶여 실제 예산 배분·조정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계를 인식, 조직 개편안에 과기혁신본부 실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았다. 과기법과 국가재정법 개정안으로 구체화했다.

과기정통부는 R&D 예타 제도를 개선하려면 업무의 실질 이관이 필수라고 본다. 길게는 3년 이상 소요되는 예타 기간을 대폭 단축하려면 과기정통부의 기술성평가와 기존 기재부의 예타를 통합해야 한다. 이원화된 현 구조를 해소하지 않으면 기간 단축에 한계가 있다.

10년 넘게 주요 R&D 사업의 배분·조정을 수행한 만큼 전문성 하락 우려도 적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는 2004년부터 R&D 투자 방향 및 기준 설정, 주요 사업 예산 배분·조정 등 예산 관련 업무를 일부 수행했다. 국가 R&D 총 지출한도 역시 최종 단계에선 기재부가 설정하는 만큼 재정 건전성이 훼손될 우려가 없다고 주장한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