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이 온실가스 의무 이행 꼭두각시인가

정부가 새해 산업계에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할당량을 3년 전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온실가스 할당량을 못 채우면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서라도 메우도록 한 배출권거래제가 처음 시행된 2015년보다도 약 130만톤 더 줄었다. 할당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배출 여유가 감소하는 것으로, 기업 부담이 더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해마다 늘어 오던 할당량을 갑자기 줄인 것도 문제지만 예측 불가능하게 시행 코앞에서 숙제를 지운 것은 더 큰 문제다. 통상 의무 이행 6개월가량의 시차를 두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날벼락을 내려친 것이나 다름없다.

제도는 바뀔 수 있어도 정부는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이전 정부가 국제사회에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를 적극 제시했다면 지금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전 정부가 다소 부담스러운 목표치를 국제사회에 약속하면서 갑작스럽게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측면에서 연간 할당량을 늘려온 것을 지금 정부가 마구 돌려세우면 안 되는 것이다.

당장 기업들은 새해 목표를 수립하면서 온실가스 할당량 부담을 약 4조5000억원 추가해야만 하게 됐다. 물론 언제 내더라도 내야할 비용은 맞다. 그러나 회계상 준비할 수 있는 금액과 준비 없이 마구잡이로 산입해야 할 예산은 성질이 전혀 다르다. 정부가 이를 모른다면 '아마추어리즘'이고 안다면 '책임 회피'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온실가스 국가 감축량 목표는 정부 이행 목표다. 그 이행을 기업이 하든 국민이 하든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것을 기업에만 무한 책임처럼 지워선 안 된다. 특히 이행 방식과 추진 과정에서 되도록 예측 및 부담이 가능한 방법과 수단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명분만 앞세우고 기업을 꼭두각시로 내세운다면 그 목표를 달성한들 우리 국익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겠는가.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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