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 최초로 국내에 망이용대가를 내기로 한 것은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도모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망 중립성 폐지 결정이라는 미묘한 시점에 이뤄지는 것으로 향후 연쇄 효과가 일어날지 주목된다.
페이스북이 국내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접속제공사업자(ISP) 한 곳에만, 그것도 국내 CP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만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 ISP와 협상이 타결되면 명실상부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는 셈이다.
망 이용대가 지불로 페이스북은 트래픽 안정적 전송이라는 실리를 확보할 전망이다. KT 외에 국내 캐시서버가 없는 페이스북은 올초 동영상 재생이 힘들 정도로 트래픽 전송에 어려움을 겪었다. 매번 모든 정보를 홍콩 서버에서 끌어오느라 벌어진 일이다. 새해 2월 '오큘러스 고'를 출시하고 가상현실(VR) 서비스를 내놓으면 상황은 악화될 게 분명하다. 페이스북은 망 이용대가를 내고, 전송품질(QoS) 보장을 받는 게 이익이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10억명에게 공급한다고 밝힐 정도로 공을 들인 오큘러스 고를 성공시키려면 한국 시장 안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VR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 통신 인프라를 갖춘 우리나라보다 알맞은 VR 시장은 없다”면서 “우리나라 시장 성공 여부가 글로벌 성패를 가름할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분도 얻는다. 페이스북과 구글 등 글로벌 CP는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아 진출하는 국가마다 갈등을 겪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업계는 '역차별' 혹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며 페이스북 등 글로벌 CP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국회와 정부, 산업계가 공동으로 규제 움직임까지 보였다. 더욱이 미국 망중립성 폐지로 망 이용대가 지불 여론이 치솟는 상황이다. 페이스북은 임의 정보전송경로(라우팅) 변경 문제로 정부 제재를 앞두고 있다. 망 이용대가 납부가 이런 비판 여론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관심은 나머지 글로벌 CP 행보다. 국내 모바일 동영상 시장 70% 이상을 장악한 구글(유튜브)이나 신규 진출을 노리는 넷플릭스 등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다. 미국 망중립성이 폐지됐다는 점과 페이스북이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점은 국내 ISP에 유리한 요소다.
하지만 망 이용대가는 사업자 자율협상 영역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콘텐츠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CP와 국내 ISP 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하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이 망 이용대가를 내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과연 충분한 대가를 낼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면서 “망을 내주다시피 한 유튜브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ISP의 철저한 협상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