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타깝게 29명 사상자를 낸 충북 제천시 화재 사고에서도 확인됐지만 대한민국은 '사고 왕국'이다. 292명이 사망한 서해페리호 침몰(1993년)에서 시작해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대한항공기 괌 추락(1997년), 대구지하철 화재(2003년), 서해 유조선 충돌(2008년), 세월호 침몰 사고(2014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2015년)에 이르기까지 선진국이나 후진국에는 흔치 않은 대형 사고가 우리나라에서만 유난히 자주 발생했다.
2016년 한 해에만 각종 사고로 2만8000명이 사망하고 42만명 이상이 부상했다. 산업 재해로는 사망 1777명, 부상 9만656명이다. 지난 50년 동안 발생한 산업 재해로 총 9만2000명이 사망하고 460만명이 다쳤다. 국민 10명 가운데 1명꼴로 산업 재해를 입은 셈이다.
교통사고는 사망 4292명, 부상 33만1720명이었다.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1만309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우리 국민은 평생 사고로 한 번꼴로 다치고, 8가구 가운데 하나가 가족을 잃는다. 사는 게 전쟁이다.
더 큰 문제는 사고 원인을 안전불감증과 부정부패로 돌리고 사고 책임자 처벌 및 안전교육으로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지난 25년 동안 왜 대형 사고는 반복되고 사고율이 세계 최고인가 하는 근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영국에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전문가가 몇 달이 걸리더라도 조사를 한다.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이틀 만에 조사를 마치고 현장을 '대청소'한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영국 경찰이 세계 모범경찰이 된 계기는 TV 카메라가 우연히 돈 받는 교통경찰을 포착하면서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사고조사위원회가 꾸려진 뒤 해당 경찰을 조사한 데 그치지 않고 경찰관 선발, 처우, 인사 문제 전반을 근본부터 파헤쳐 들어가 제도 개선과 법안 건의를 하면서 경찰이 개혁됐다.
대형 사고의 겉으로 드러난 원인은 부주의와 부패일 수 있지만 근본 원인은 현대 문명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의 결핍에 있다. 선진국엔 대형 사고를 예방할 능력이 있지만 후진국엔 대형 사고가 발생할 문명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선진국 같은 대형 시설과 산업이 있으면서 후진형 행정 능력이 있는 우리나라가 가장 위험하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의 근대사를 통찰해서 얻은 해법은 과학 합리화로 국가를 운영하는 '과학국정(科學國政)'이다. 예컨대 20여년 동안 꾸준한 연구개발(R&D)·투자로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가 절반으로 줄었지만 사회 관심이 부족한 산업 재해와 자살 사고는 지금도 여전한 형편이다.
사고를 줄이는 것만이 과학국정의 목적은 아니다. 과학국방으로 병력 중심에서 과학기술군으로 갈 수 있고, 방위 산업 육성과 자주 국방도 가능해진다. 과학정보는 정보 자주화의 요체로 국가정보원을 해외 정보 수집에 주력케 한다. 과학외교는 핵미사일협정, 국제전염병, 기후변화 대처로 국익을 지킨다. 과학경찰은 과학 수사와 첨단 방범으로 시민 보호 및 치안 산업을 이끈다. 과학행정은 스마트정부4.0으로 디지털 민주주의를 구현한다. 과학문화는 문화콘텐츠·SF산업을 견인하고, 과학교육은 교육콘텐츠·에듀테크산업으로 사이버 영토를 개척한다. 과학교통, 과학식품, 과학농업, 과학환경 등 모든 국정 영역에서 과학과 융합될 때 국가의 품격이 높아진다. 신성장 동력도 창출되며, 국가 경쟁력도 배가된다. 종종 오해하는 부분으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나 R&D가 과학국정은 아니다. 이는 단지 과학기술 육성일 뿐이다. 우리가 부족한 부분은 아니다.
국가 대개조가 필요한 지금 미래 세대를 보고 '2050년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자. 위험 사회에서 사람 중심 사회로 가는데 정치, 안보,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 DNA는 필수다. 칼럼을 시작한 이유다.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지난해 말 출범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돼 산업과 과학기술 분야 국정과제를 담당하고 있다. 2003년부터 4년 동안 청와대 행정관으로 국방개혁을 추진했다. KAIST 부교수를 거쳐 2016년 10월부터 GIST에 재직하고 있다. 2015년 국제전기전자학회 최우수논문상, 2016년 KAIST 대표 연구 성과 등에 선정됐다.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ctrim@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