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바이오 산업 육성에도 대한민국 경쟁력은 퇴보했다. 규제, 시장 접근성, 지식재산권(IP)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계점을 노출하며 이스라엘 등 신흥국에 추월당했다. 규제 혁신과 기업 연구개발(R&D) 확대가 요구된다.
15일 미국 컨설팅업체 푸가치 컨실리엄이 발간한 'BCI 서베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은 21개 신흥국 가운데 4위를 차지했다. 2016년 싱가포르에 이어 신흥국 2위를 기록했지만 이스라엘, 대만에 밀려 순위가 하락했다.
보고서는 다국적 바이오제약사 임원 대상 △과학 능력·인프라 △임상 연구 조건 △규제 환경 △시장 진입·금융 △IP 등 5개 영역의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한다. 100점 만점에 국가별 경쟁력을 지수화해서 순위를 발표한다. 21개 신흥국과 10개 성숙국으로 나눠 평가한다.
신흥국 1위는 싱가포르(87.36)다. 전년(85점) 대비 규제 개선, 인프라 등 전 영역이 고르게 성장하며 선두를 유지했다. 뒤를 이어 이스라엘(76.97점)과 대만(76.76점)이 차지했다. 2016년 4위를 차지한 이스라엘은 두 계단 올라섰고, 대만은 순위를 유지했다.
우리나라는 총점 72점으로 4위를 기록했다. 2016년 77.94점으로 신흥국 2위까지 올랐지만 1년 사이에 두 계단 하락했다. 총점 하락 폭은 신흥국 톱5 국가 가운데 가장 컸다. 2016년과 비교해 BCI 지수 변동이 거의 없는 이스라엘, 대만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를 앞질렀다.
우리나라는 과학 능력·인프라를 제외한 영역에서 경쟁력이 하락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임상연구 환경이 고도화되지만 승인 과정이 복잡하고, 외국계 기업과의 협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규제 장벽 때문이다.
기업 시장 접근성과 투자 부문에서는 낙제점을 받았다. 2016년 해당 분야 경쟁력은 선진국 대비 62%였지만 지난해 43%까지 떨어졌다. 정부의 강력한 약가 통제와 정책 예측 불가능성이 원인이다.
유승준 한국바이오협회 상무는 “외국에서 바라볼 때 우리나라는 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강력히 통제하고, 보건의료 분야 정책의 일관성 부족으로 시장 진입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혁신 스타트업이 투자, 인·허가 등 난관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도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약가 인하 움직임이 활발하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따른 재원 마련을 위해 약가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거래 약가 인하는 다음 달에 시행된다. 1만7134개 의약품 실거래가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 저렴하게 약을 공급받지만 기업은 대규모 약가 인하로 말마암아 산업 위축이 우려된다.
초기 바이오 기업 투자 부족도 경쟁력을 악화시킨 요인이다. 지난해 정부가 초기 바이오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해 약 38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그러나 초기 기업 투자 비율은 10% 안팎에 그쳤다. 혁신 스타트업·벤처가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신의료 기술, 기술 특례 상장 등 연결고리 정책도 부족하다. 중소·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부처별로 산재된 바이오 정책과 정권마다 바뀌는 방향성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임정희 인터베스트 전무는 “혁신 신약이 시장 진입을 위해 보험 적용이 중요하지만 이를 지원하는 신의료기술제도 등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기존 제도 운영의 혁신과 바이오제약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성숙국 대상의 BCI 지수는 미국이 총점 86.89점으로 1위를 유지했다. 스위스(82.49점), 독일(78.11점), 영국(75.88점), 아일랜드(75.11점), 일본(72.42점)이 뒤를 이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